정다주 부장판사, 임 전 차장 재판서 '사법농단 사건' 첫 증언
"당시 부담 느꼈다…행정처, 재판 개입 가능했는지 지금도 혼란스러워"
임종헌 측 "아이디어 차원 대응 검토했을 뿐…재판 영향 의도 아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고동욱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처음 증인으로 소환된 현직 법관이 임 전 차장으로부터 특정 사건의 처리 방향을 검토하도록 지시받았다고 증언했다.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정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며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각종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 현직 법관이 증언석에 앉은 것은 정 부장판사가 처음이다.
정 부장판사는 2014년 전교조 법외노조 효력정지 사건과 관련한 내용을 검토한 문건,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 선고를 내린 뒤 각계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한 국회 동향 보고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한 보고서 등을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했다고 인정했다.
이 가운데 전교조 사건과 관련한 문건에는 1·2심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였으나 대법원은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들여 파기환송하는 것이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위헌 선고 이전에 결정을 내려야 극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기재됐다.
이는 당시 양승태 사법부가 상고법원 설치 등 현안에 청와대 협조를 얻기 위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은 정황이라고 검찰에서는 판단한다.
이 문건에 대해 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논리와 결론 등을 상세히 구술한 것을 정리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헌재의 통진당 사건 관련 결론이나 내부 평의 내용 등 정보를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검찰이 "재항고 사건을 인용해야 한다, 인용 방향으로 검토하라고 임 전 차장이 지시한 것이냐"고 묻자 "결국 그런 지시를 했던 것"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으로부터 '청와대가 전교조 사건을 청와대에서 최대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만약 재항고를 기각하면 역풍이 불 수 있고, 사법부에 대한 보복이 이뤄질 수 있다'는 배경 설명을 들었다"며 "그래서 재항고를 인용하는 것으로 구술해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복기했다.
그가 작성한 문건에는 이 사건의 본안 판단은 시간을 두고 결론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은 이 내용이 당시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재판 진행 속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재판부가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묻자, 정 부장판사는 "과연 그런 것이 가능했는지, 지금 저로서도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며 "이 사건을 비롯해 여러 일련의 사태에 비춰 저도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이날 검찰이 "조사를 받을 때 '사법부 권한을 남용하는 부분이 많이 포함됐고, 비밀스럽게 작성해 부담을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진술한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정 부장판사는 "그렇게 진술한 적 있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전반적 업무 주제의 엄중함, 생소함 등 때문에 부담감을 말한 것"이라며 "대외적으로 비밀이 공표되면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정 부장판사는 또 법원행정처에 재직하던 때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로부터 수시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성창호 부장판사가 심의관들에게 각자 하는 업무를 보고하도록 독촉했고, 법원행정처의 실·국을 수시로 방문했다고 정 부장판사는 진술했다. 또 심의관들과의 회의 석상이나 사석에서 대법원장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이날 검찰이 제시한 문건들에 대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법원의 대응 방안을 검토했거나,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 판결들을 제시했을 뿐"이라며 "재판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검찰 측의 증인신문이 이뤄지는 동안 여러 차례 신문 방식이나 질문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다가 검찰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의 이의 제기가 이어지자 검찰은 "피고인이 마치 소송을 지휘하듯 어떤 질문은 하지 말라고 하니 혼란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에 재판부는 "증인에게 충분히 질문을 이해하고 답변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고 본다"며 임 전 차장을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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