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지뢰까지 캐내며 일군 땅인데…나라가 다 빼앗는 꼴"

입력 2019-04-02 14:59  

[르포] "지뢰까지 캐내며 일군 땅인데…나라가 다 빼앗는 꼴"
국유지 임대 규제로 직격탄 맞은 양구 해안면…집단 소송도 불사
1인 6만㎡ 제한 "인건비도 안 나와"…마을 공동체 흩어질 위기



(양구=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저 앞에 싹 갈아놓은 땅 보이죠? 돌이 가득하고 지뢰도 묻혀있던 황무지를 옥토로 만든 건데 이제 다 빼앗아 간답니다."
강원 양구군 해안면은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뺏고 뺏기는 격전 끝에 수복한 민통선 이북지역으로 전체 토지의 70% 이상이 국유지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이곳에 당시 정부는 집단 이주정책을 펼쳐 이주민에게 토지 분배와 경작권을 줬다.
이 약속을 받고 해안면으로 향한 이주민 600여 명은 황무지 속의 돌과 포탄, 지뢰까지 골라내면서 비옥한 농토로 일궈냈다.
60여년 전 포화가 가득했던 해안면에 최근 국유지 임대 규제 직격탄이 떨어져 지역 농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1인당 임대 가능 국유농지 면적을 최대 6만㎡(1만6천여평)로 제한한 까닭이다.
현재 경작권을 그대로 보상받을 수 있는 농지는 수의계약을 통해 1만㎡(3천여평)까지만 빌릴 수 있고, 그 이상은 경쟁입찰을 거쳐야 한다.
10여년 전 넓은 땅에서 인삼 농사를 짓기 위해 해안면으로 온 반상현(67)씨는 2일 애써 일궈놓은 땅을 가리키며 한숨지었다.
애써 가꿔온 농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인삼도 자라지 못하던 땅인데 수년간 일궈서 겨우 밭을 만들어 놓았다"며 "이제 인삼이 제대로 날 때인데 땅이 많다고 뺏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다른 농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주민 박모(67)씨는 "사과나무에서 상품성 있는 사과를 따려면 적어도 5∼7년은 걸리는데 농장이 어떻게 될지 몰라 지지목도 못 세우고 걱정만 늘어간다"며 "감자 농사를 하는 집들도 이제 씨감자를 심어야 하는데 땅을 뺏길지 모르니 때를 놓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 지역에는 현재 농민 651가구, 1천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농민들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와 5년마다 수의계약을 맺어 농사를 짓고 있다.
현재 주민 275명이 빌린 국유지는 523만㎡로 다른 시군보다 농사 규모가 크다.
따라서 1만㎡ 이상 농지는 법적으로 주인이 없는 상태가 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농민들은 나라가 땅을 빼앗고 굶어 죽게 만드는 처사라며 분노하고 있다.
사과 농사를 하는 신현근(54)씨는 "3.3㎡당 기대 수익이 많아야 1천원 남짓인데 입찰을 통해 6만㎡를 받아도 1명 인건비가 나오지 않는다"며 "캠코가 이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역 공동체 붕괴도 우려된다.
한 주민은 "땅이 입찰에 들어가면 주민들 사이에도 눈치 싸움을 하느라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외지인들이 높은 가격에 땅을 낙찰받아 이곳 사람들이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라도 말했다.



이에 주민들은 농지권리찾기위원회를 구성해 정부를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에 현재 경작지를 조건 없이 등기 불하할 것과 경작권 회수 시 현실적인 개간비를 보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을 내다보고 한 대에 1억원이 넘는 트랙터를 사 개간 작업을 벌여왔다"며 "황무지를 옥토로 일구기 위해 3.3㎡당 5만원 이상이 들어갔는데 정당한 보상 없이 땅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주장했다.
또 캠코에는 대부 계약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경작권을 보장할 것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캠코는 주민들의 개간 노력을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전쟁 이후 무주지로 남은 땅 위에 60여년 간 이어진 해안면의 역사적 특수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번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yangd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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