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yonhapnews.co.kr/etc/inner/KR/2019/04/03/AKR20190403131700005_01_i.jpg)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진달래 꽃눈 맞추며 / 산에 오르다 둘러보니 / 봄날이 벌써 앞서가더라'('화살시편 26 - 봄날' 전문)
올해로 시력 53년째를 맞이한 김형영 시인의 열번째 시집 '화살시편'(문학과지성사)을 읽다 보면 마치 기도하는 듯 경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독자적인 시 세계의 원형을 재확인하고 직관을 통해 간결하게 함축된 성서적 시어로 삶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다.
관능적이고 동물적인 이미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초기 시들과 달리 그의 최근 시들은 일상을 살피며 삶과 죽음을 관조하는 종교적·성찰적·자성적 느낌을 강하게 띤다.
다양한 시적 변화를 거쳐왔으나, '배운 말 가운데서 가장 순수한 말을 바치는'(1979년·'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 뒤표지 글) 행위가 곧 시를 쓰는 일임을 정직하게 믿어온 시인의 굳은 의지는 한결같다.
'보이는 것 중에서 가장 신성한 / 이제 막 태어나는 아가말, // 좋은 시인의 시도 / 태어난 지 세이레쯤 된 / 아기 옹알이 같은 / 눈에 보이는 음악이어라.'('시' 부분)
제목 '화살시편'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순간적으로 짧게 올리는 기도인 '화살기도'에서 따왔다.
'화살시편'을 소제목으로 한 3부의 시들은 짧지만 대상을 오래도록 관찰한 후 상황과 언어에 대해 고도의 직관적 인식을 행하는 시인의 묵직한 성찰이 스며 있다.
'너무 어두워 / 찾은 길도 밤길이다 // 어디 길동무 없소?'('화살시편 17 - 밤길' 전문)
'빈 절터 / 쑥대밭 // 거기서도 꿈은 자라고 있구나'('화살시편 22 - 꿈이 자라는 곳')
1부 '그 시간'에는 노년을 살아가는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2014년 4월 16일 5천만이 울었다'고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가 하면, 고인이 된 오랜 벗 김현, 김치수, 임영조와 거장 이청준을 떠올리기도 한다.
'내가 죽거든 / 내 눈 뚜껑은 열어둬. / 관악산 문상을 받고 싶어. // 아침마다 걷던 숲길이며 / 수억만 년 묵상 중인 바위들, / 새들의 만가, / 춤추는 나무들, // 내가 죽거든 / 관 뚜껑을 열어둬. / 용약하는 관악산의 내 친구들 / 마음에 담아 떠나고 싶어.'('내가 죽거든' 전문)
2부 '지금 피는 꽃은'에서 시인은 일상적인 풍경에 주목한다. 일상을 해치는 현실을 비판 섞인 목소리로 우려하나, 맺음말은 낙관에 기울어 있다.
'이러다간 / 이러다간 / 봄은 영영 입을 다물지 몰라. / 생명은 죽어서 태어나고 / 지구는 죽은 것들로 가득할지 몰라. // 그래도 봄을 믿어봐.'('그래도 봄을 믿어봐' 부분)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자신의 시는 '여전히 미완성 진행형'이라고 적는다.
'쓰고 고치고, 또 고쳤는데도'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불가능을 향해 끊임없이 매진한 그의 50여년간 도전기는 이번 시집에서 응축된 형태로 그 정수를 드러낸다.
문학과지성사. 123쪽. 9천원.
bookman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