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노스웨스턴대 연구진, 숨겨진 '생체시계' 기능 발견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우리 몸엔 하루 24시간 주기로 작동하는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있다. 그래서 장거리 해외여행을 하고 나면 시차로 인한 피로(jet lag·시차증)를 느낀다.
그런데 이 생체시계가 뇌 신경(뉴런)을 보호하고 퇴행성 신경질환을 예방하는 기능도 한다는 사실이 동물실험에서 밝혀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라비 알라다 교수팀은 지난 2일(현지시간) 이런 내용의 연구보고서를 과학저널 '셀 리포츠(Cell Reports)'에 발표했다.
알라다 교수는 이 대학의 에드워드 C. 스턴츠 석좌교수로서 문리대(Weinberg College of Arts and Sciences) 신경생물학과장을 맡고 있다.
의학 전문매체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xpress.com)에 따르면 퇴행성 신경질환 환자는 자주 생체리듬과 수면·각성 주기가 깨진다. 평소보다 잠을 많이 자다가도 때때로 숙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증상이 지속하면 불안증, 일반적 스트레스, 삶의 질 저하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알라다 교수는 "직관에 반하는 것이지만 약간의 스트레스는 몸에 이롭다는 걸 확인했다"면서 "생체시계를 섬세하게 조작해 봤더니 그리 강하지 않은 스트레스는 뇌 신경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생체시계의 고장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초기 증상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수면 장애를 겪다가 다른 퇴행성 질환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생체리듬의 교란이 질병의 원인이나 결과가 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알라다 교수팀은 초파리를 실험 대상으로 선택했다.
초파리는 수면·각성 주기를 제어하는 뉴런이 놀라우리만큼 인간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헌팅턴병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초파리는, 같은 병을 가진 인간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유전자 변이로 생기는 헌팅턴병의 주요 증상은 무도 증(신체 부위를 불규칙하게 움찔거리는 병)·정신이상·치매 등이다.
알라다 교수는 "보통 초파리는 24시간을 주기로 수면 시간과 활동 시간이 나뉘는데 헌팅턴병에 걸리면 이 리듬이 사라진다"면서 "병든 초파리는 자는 시간과 깨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두 그룹으로 나눠 초파리의 생체리듬을 바꿨다.
한 그룹은, 밤낮의 교차 사이클에서 낮 시간대를 변경해 하루를 20시간으로 설정했다. 다른 그룹은, 생체시계를 제어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게 했다. 이는 초파리들이 매일 4시간씩 동쪽으로 비행해 시차증을 느끼게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그런데 양쪽 그룹 모두, 헌팅턴병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줄고 사멸하는 뉴런도 감소했다. 시차증이 뇌에 더 많은 손상을 입힐 거라는 당초의 예상과 반대였다.
이에 고무된 연구팀은 생체시계 제어에 관여하는 수십 종의 유전자들을 샅샅이 훑어 어떤 것이 퇴행성 신경질환으로부터 뇌를 보호하는지 가려내기로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게 약칭 hop로 통하는 열충격단백질(heat shock organizing protein)이다. 생체시계가 제어하는 이 유전자는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에도 관여한다.
단백질 접힘이란 단백질 분자를 구성하는 펩타이드 사슬이 2차 구조의 배치 순서에 따라 고차 구조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은 20종이 있는데, 몇 개의 아미노산이 어떤 순서로 연결됐는지에 따라 1차·2차·3차·4차 구조로 나눠진다. 처음의 아미노산 배열 순서를 1차 구조라 하고, 이 단계의 단백질 분자가 구부러지고 꼬이면서 특정한 형태를 갖추면 2차 구조가 된다.
단백질이 제대로 접히지 않으면 여러 가지 퇴행성 신경질환을 유발한다. hop 유전자가 흥미로운 약제 표적으로 평가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헌팅턴병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에서 hop 유전자를 억제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깨졌던 생체시계 리듬이 복원되고, 뇌의 질병 유전자가 줄어들면서 이런 유전자에 의해 사멸되는 뉴런의 수도 감소했다.
다음 단계로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을 가진 초파리에 hop 유전자 실험을 할 계획이다. 그 결과에 따라 여러 퇴행성 신경질환의 진행을 초기부터 늦추는 치료법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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