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길을 묻다] 위기의 제조업…중국에 쫓기고 잇속은 일본이

입력 2019-04-06 09:07  

[한국경제 길을 묻다] 위기의 제조업…중국에 쫓기고 잇속은 일본이
세계 1위 품목 대부분 중국과 경쟁…핵심 소재·부품은 일본에 의존
선진국은 앞다퉈 제조업 육성…"우리는 안일에 젖어 변화 노력 부족"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김동현 김수현 기자 = 과거 한국의 고속 성장을 이끈 제조업이 최근 몇 년 어려움에 부닥친 이유는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이 제조 강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자동차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성장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으며 정부와 기업이 핵심 소재·부품을 선진국에 의존하는 등 질적 성장을 소홀히 하면서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 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 첨단기술 국산화로 바짝 추격하는 중국
중국은 제조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30년 장기 비전의 첫 단계인 '중국제조 2025' 정책을 2015년에 발표했다. 2025년까지 의료·바이오, 로봇, 통신장비, 항공 우주, 반도체 등 10개 첨단제조업 분야에서 리더가 되겠다는 중국의 야심 찬 제조업 육성책이다.
정책 성과에 대한 평가에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 제조업은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려고 무역전쟁을 시작했을 정도로 이미 성장했다.
'중국제조 2025'가 한국에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이 홍색공급망(red supply chain·부품을 스스로 조달하고 완제품 생산까지 마치는 자급자족식 공급망) 정책을 기반으로 첨단기술 분야의 제품까지 국산화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대중 중간재 수출 비중이 큰 한국에는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는 2016년 12월 보고서에서 '중국제조 2025' 정책으로 가장 위협받을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제조업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중과 특히 중국이 육성하고자 하는 첨단제조업이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근거였다.
보고서는 이 중에서도 한국의 자동차와 기계산업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실제 현대자동차는 최근 중국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다.
현대차는 2016년까지 중국에서 연간 100만대 이상을 판매했지만, 이후 중국 경쟁사의 성장과 사드 갈등 등의 영향으로 중국 사업을 구조조정 중이다.
중국은 과거 한국이 일본을 제친 것처럼 반도체, 조선, 디스플레이 등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한 77개 품목 대부분이 중국과 경쟁 중이며 15개 품목은 중국이 2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20개 국가전략기술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2014년 1.4년에서 2016년 1.0년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은 제조업 육성을 위해 경쟁국의 핵심 인력을 빼가는 것은 물론 기술 탈취와 같은 불법 수단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국내 연구원으로부터 넘겨받으려 입국한 중국인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술 유출 혐의로 구속기소 됐으며 이후에도 기술 유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 '메이드 인 재팬' 없으면 멈추는 공장
강제징용 배상판결 이후 재계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불화수소 등 소재·부품 수출 금지로 보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반도체 제조장비와 소재·부품을 주로 일본과 미국 등 외국에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1천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온전히 국내 기술만으로 달성한 것은 아니었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반도체 분야 국산화율은 장비 20%, 소재 50%로 장비의 80%, 소재의 50%를 외국에 의존했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수입은 반도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연구원이 2014년 기준 주요 산업의 중간투입 중 국산비율을 분석한 결과 제조업 전체 평균이 54%에 불과했다. 반도체(27%)와 디스플레이(45%)가 평균보다 낮았고, 철강(71%), 자동차(66%), 가전(63%) 등은 높았다.
산업연구원 정은미 박사는 "고부가가치화에 필요한 것들을 다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기업의 전략과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장비 주문 과정에서 모든 정보가 다 유출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제조업의 일본에 대한 의존도는 만성적인 무역적자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은 일본에 305억달러 상당을 수출하고 546억달러를 수입해 241억달러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주요 수입품목을 보면 반도체 제조용 장비가 전체 수입액의 11.3%로 가장 많았고, 반도체(8.3%), 철강판(4.5%), 플라스틱 제품(4.1%), 정밀화학원료(3.5%), 기초유분(3.4%) 등이 뒤를 이었다.
최근 한국에 보복조치를 언급하는 일본 내에서 한국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중 일본 진출 기업들의 흑자 비율이 85%로 가장 큰 국가라는 점을 들어 보복조치에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 제조업에는 아이러니다.

[표] 2018년 한국의 대일본 수입(단위: 천달러)

┌──┬─────────┬────────────────┐
││ │ 2018년 │
│순번│ 품목명 ├──────┬────┬────┤
││ │ 수입금액 │ 수입 │ 비중 │
││ │ (천불) │ 증감률 ││
├──┼─────────┼──────┼────┼────┤
││ 총계 │ 54,603,749│ -0.9%│ 100.0%│
├──┼─────────┼──────┼────┼────┤
│ 1 │반도체 제조용 장비│ 6,190,931│7.8%│ 11.3%│
├──┼─────────┼──────┼────┼────┤
│ 2 │ 반도체 │ 4,518,952│ -3.3%│8.3%│
├──┼─────────┼──────┼────┼────┤
│ 3 │ 철강판 │ 2,453,970│5.2%│4.5%│
├──┼─────────┼──────┼────┼────┤
│ 4 │ 플라스틱 제품 │ 2,246,953│ -5.3%│4.1%│
├──┼─────────┼──────┼────┼────┤
│ 5 │ 정밀화학원료 │ 1,901,825│ 29.3%│3.5%│
├──┼─────────┼──────┼────┼────┤
│ 6 │ 기초유분 │ 1,870,400│4.3%│3.4%│
├──┼─────────┼──────┼────┼────┤
│ 7 │ 합금철선철및고철 │ 1,667,176│ 28.5%│3.1%│
├──┼─────────┼──────┼────┼────┤
│ 8 │ 계측제어분석기 │ 1,475,680│5.1%│2.7%│
├──┼─────────┼──────┼────┼────┤
│ 9 │ 원동기및펌프 │ 1,356,283│ -4.6%│2.5%│
├──┼─────────┼──────┼────┼────┤
│ 10 │ 자동차 │ 1,232,159│5.2%│2.3%│
└──┴─────────┴──────┴────┴────┘
(자료: 한국무역협회)

◇ 선진국은 국가적으로 제조업 육성…"한국은 전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의 급부상과 한국의 수입 소재·부품 해외 의존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수년 전부터 있었는데도 정부나 기업 모두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선진국을 모방하는 추격형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데도 이를 고수하면서 고부가가치화와 신산업 창출이 늦어졌다고 지적한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제조업이 변화하는 속도가 느려졌다"며 "우리 주력산업들이 그동안 성공해오면서 안일함에 젖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이 경쟁력 강화를 소홀히 한 사이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제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했다.
미국은 2011년 국가혁신전략, 독일은 2012년 인더스트리 4.0, 일본은 2013년 일본재흥전략 등 앞다퉈 전략을 내놓고 꾸준히 밀어붙이며 효과를 보고 있다.
한국도 제조업 정책이 없지는 않았다.
정부는 2014년 6월 제조업과 정보기술(IT) 융합을 통한 스마트 산업혁명을 내세운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했다.
자동화와 IT를 도입한 스마트공장 1만개 확산, 융합신산업 조기 창출, 기업의 사업재편 촉진,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통해 2024년까지 수출 1조달러를 달성하고 제조업 세계 4강으로 도약한다는 내용이었다.
스마트공장 보급은 현 정부가 확대 추진하고 있지만, 나머지 정책은 특별한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우리나라는 꼽을만한 제조업 정책이 거의 없다"며 "제조업에 4차 산업혁명을 추가한다는 '제조업 혁신 3.0'이 있었지만, 딱히 효과를 평가할만한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이후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산업이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산업·제조업 정책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주력산업 고도화와 신산업 창출 방안 등을 담은 '제조업 활력 회복 및 혁신전략'을 발표하고 세부계획을 이행 중이다.


blueke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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