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 시인의 시에 관한 단상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시: 서비스 정신이 가장 부족한 장르. 알아서 찾아오고 알아서 맛을 보고 알아서 욕을 하든 칭찬을 하든 혼을 빼앗기든 아무튼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장르. 그러니 온갖 서비스가 난무하고 온갖 서비스가 우위를 점하는 시대에 전혀 걸맞지 않은 장르. 어울리기도 힘들고 어울리기를 바라지도 않는 장르. 어울리려고 노력해봤자 그 또한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형식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장르. 어찌해도 안 되는 반서비스의 장르.'(65쪽)
시인에게 시란 무엇일까.
등단 21년 차 중견 시인인 김언은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난다)에서 이같이 시를 정의한다.
1998년 등단해 총 6권의 시집을 낸 시인은 이번 책에서 시를, 그리고 한 시절을 기록한다.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문학지 등에 기고한 시인의 시에 대한 단상을 묶은 이 시론집은 다른 시론집들과 구성과 내용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시작부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자'라는 '이경림 선생님'에게 보내는 편지로 서문을 갈음한다.
이경림 시인의 소설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이룸)를 '고요한 분탕질'이라고 해설한 것을 보고 '국경', 그리고 '장르'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그는 적는다.
'시도 아니었고 산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었던 나뭇잎 한장에 쓴 소설'로 인한 분탕질이 시간을 거쳐 다시 고요히 시로 돌아와 '상자들'(랜덤하우스코리아)이라는 한권의 시집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며 그는 "얼마나 많은 상자가 이 세상을 품고 있을까요?"하고 묻는다.
이처럼 시라는 우주를 향한 그만의 예리한 사유는 그만의 정확한 문장으로, 시라는 미래를 향한 그만의 타고난 입담은 그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번 책은 시처럼 제멋대로 흘러가고 풀려가, 마치 한 권의 책이 한 편의 시처럼 읽힌다.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시는 사랑에 대해서도 증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시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시는 무엇 자체다. 시는 고독 자체이고 결별 자체이며 또한 사랑 자체다. (…) 그것 자체이자 무엇 자체로 시는 말한다. 말하는 것 자체로 그것은 있다. 시가 있어야 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있기 위해서 있다.(32∼33쪽)
시에 관한 자유로운 감상이 담긴 글이 많지만, 현실 속에서 시의 위치와 역할 등을 논한 글도 눈에 띈다.
그는 자신이 첫 시집을 출간한 2003년 여름,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후를 돌아보며 '축배와 독배 중 어떤 잔이 큰가?'하고 묻는가 하면 한국 시의 '소통'과 '자폐'에 대해 논한다.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서정주의 시 '자화상'에 대한 비평 등 실제 시에 대한 시론 또한 고루 담았다.
특히 이 책은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를 시에 대한 매너리즘의 흐물흐물한 뼈대를 다시금 곧추세우게 한다.
20년이 넘게 시를 쓰고도 우리에게 낙은 '앞으로 계속 시를 쓰는 것뿐'이라며, '시인에게는 불행도 행복도 고통도 환희의 순간도 외롭게 찾아오는 것 같'다고 말하는 시인을 보며 우리는 그와 '외롭게, 외롭게 다시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난다. 36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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