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X 이사장 탈락 후 비망록에 원망 글…"가라고 했으면 제대로 해놨어야"
"대통령 영향력 기대하고 이상득에 돈"…10일 김윤옥 증인채택 결정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이보배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거액의 뇌물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5일 "이 전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자금을 지원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자금 지원 경위 등을 증언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자금 지원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가깝게 계신 분이 큰일을 하게 돼서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잘 계시면 제가 도움받을 것이라고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전 회장은 2007년∼2011년 이상득 전 의원이나 이 전 대통령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 편에 현금 22억5천만원을 건네고 이 전 대통령 등에게 1천230만원어치 양복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작성한 비망록을 토대로 이 가운데 19억원과 1천230만원 상당의 의류 제공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 전 회장은 이날 변호인이 "당신이 대선 공로자이기 때문에 응분의 대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냐"고 묻자 "그 당시엔 당내 경선이라든지 대선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도움을 드리려고 그랬지, 제 자리를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비망록엔 이 전 대통령에게 인사 청탁을 했다는 내용 등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 전 회장 자신도 이날 증인신문 과정에서 "금융기관장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변호사를 만나면서 금융 관련 기관장이나 국회의원이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느냐"는 검찰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유에 대해선 "아무래도 이상주는 VIP 사위고 하니까 조그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에게 자금을 제공할 때 내심의 의사는 일단 증인이 꿈꿔왔고 포부를 가진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되고 임명권자인 피고인으로부터 도움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없다면 거짓말 아니겠나"라고 답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목적으로 2008년 4월 이상득 전 의원에게 3억원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도 궁극적으로 인사권자이자 임명권자인 이 전 대통령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이 전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비서관을 통해 자신에게 직접 전화해 KRX(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맡는 건 어떠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KRX 이사장 선임이 기대와 달리 무산되자 비망록에 이 전 대통령이나 이상주 변호사를 원망하는 글을 적어놨다.
그는 "KRX를 저보고 가라고 했으면 제대로 (작업을) 해놨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을 원망하고 증오하게 된 것이 대선 과정에서 거액의 자금 지원 사실을 다 알면서도 챙겨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냐"는 검찰 물음에도 "그런 것도 포함됐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이 전 회장은 2007년 7월 서울 가회동을 찾아가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돈을 전달했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사전에 이상주 변호사와 통화를 하고 가회동에 갔다"며 "대문이 열려서 안에다 (돈 가방을) 놨고 (여사님은) 저쪽 마루에서 얼굴만 봤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그러나 이 전 회장의 비망록 내용을 믿을 수 없다며 뇌물 혐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증인신문은 몇 차례 무산된 끝에 이날 열렸다. 그는 재판부가 법원 홈페이지에 증인신문 일정을 공지하자 건강상 이유 등을 들어 불출석 의사를 밝혔고,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하자 이날 증인 보호를 신청하고 법정에 나왔다.
재판부는 김윤옥 여사와 이상주 변호사에 대한 증인 채택 여부를 오는 10일 열리는 재판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이날 재판에선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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