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로 주택 잃고, 산불로 보금자리 빼앗겨"
(속초=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물이 넘쳐 보금자리를 잃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화마가 덮친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에서 만난 심수길(67)씨는 17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삶터를 한순간에 잃은 그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던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씨는 2002년 8월 31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긴박했던 순간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태풍 '루사'로 닥쳐 고등학생이던 아들 둘과 아내를 트랙터를 태우고 집을 나오자마자 수마가 순식간 모든 걸 쓸고 지났던 순간이다.
집이 완파돼 1년여를 컨테이너 생활을 하며 새로 집을 지었지만, 이번에 대형산불로 또다시 집을 잃게 됐다.
심씨의 주택은 앙상하게 골격만 남은 것은 물론 마당에 있던 농기구까지 모조리 불길에 녹아내려 잿더미만 남았다.
피해조사를 나온 속초시청 공무원과 대화를 나누던 심씨의 얼굴은 내내 참담한 모습이었다.
심씨는 "집을 잃은 당시에 정부에서 받은 돈이 1천300만원뿐이어서 당시에 살아남은 소를 팔아 집을 다시 지었다"며 "이번에는 주택을 걱정 없이 지을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 강모(60)씨도 마당 옆에 새까맣게 타버린 볍씨를 바라보며 긴 한숨만 내쉰다.
이웃과 함께 못자리를 내기 위해 볍씨 발아를 하려던 참이었다.
강씨는 "집은 그렇다 치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지어야 사는데 이것도 저것도 못 해 너무 힘들다"며 "수해 때는 설거지할 거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이 사라져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강씨는 혹시나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챙겨 나올 가재도구가 있을지 둘러보지만, 허탈한 마음만 더한다.
그는 "해가 바뀌었다고 아들이 꽃구경 여행 가서 입으라고 사준 옷마저 가져갔다"며 "화마가 모든 걸 앗아갔다"고 말했다.
심씨의 집을 찾은 최만희(46)씨는 "심씨를 비롯해 피해를 본 주민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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