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의 전쟁…목숨 건 사투·범정부 총력대응 더 큰 피해 막았다

입력 2019-04-07 16:56   수정 2019-04-07 16:59

불과의 전쟁…목숨 건 사투·범정부 총력대응 더 큰 피해 막았다
발생 2시간 만에 전국 소방력 총동원…4시간 만에 '총력대응' 지시
야간 진화능력 여전히 한계 노출…산림·소방 역할분담 개선 등 과제




(속초·서울=연합뉴스) 이재현 이유미 임형섭 김지헌 기자 = 지난 4일 밤 강원도 일대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은 임야 530㏊를 태우고 사망 1명, 부상 1명, 이재민 700여 명의 피해를 남겼다.
정부는 발화 이후 사흘 만인 6일 고성·속초·동해·강릉·인제 등 5개 지역에 발생한 산불의 '진화율 100%'를 선언했다. 전국의 소방인력이 총동원되는 등 그야말로 '불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2005년 양양·고성 화재 이후 최대 규모라는 이번 화재를 비교적 크지 않은 피해 속에 신속히 진화할 수 있었던 데는 시의적절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 조치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목숨 건 사투를 벌인 소방관과 군인, 경찰, 공무원의 헌신이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범정부 차원의 유기적 대응이 잘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다.
그러나 야간 진화작업 능력의 여전한 한계와 국가안보실장의 국회 이석 불허,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공백 등 논란은 옥에 티로 꼽힌다.



◇ 아수라장 방불케 한 화염…45시간 만에 큰 불길 잡아
가장 늦게까지 화염을 뿜던 인제 산불은 6일 정오를 기해 주불 진화가 완료됐다. 4일 오후 2시 45분 시작됐으니 45시간 만이다.
본격적인 산불과의 전쟁은 4일 오후 7시 17분 고성에서 벌어졌다. 도로변 전신주 개폐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야산으로 옮겨붙어 강풍을 타고 확산했다.
소방당국은 물탱크와 펌프차 등 장비 23대와 소방대원 등 78명을 투입해 초기 진화에 나섰으나 강풍 탓에 큰 불길을 잡는 데 실패했다. 오후 7시 50분께 인근 마을에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고성은 물론 속초까지 도심 곳곳 건물에 불이 붙고, 특히 불을 피하기 위한 차량이 일시에 쏟아지면서 도로는 거대한 '피난길'을 이뤘다.
설상가상으로 고성과 속초지역에는 성인이 똑바로 서 있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다. 오후 9시까지 고성과 속초지역에서 관측된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26.1m에 달했다.
야간이라 헬기 투입도 어려워 불길이 번지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확산을 막기 위한 저지선을 구축하고,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피 활동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불은 오후 11시 50분께 강릉과 동해까지 덮쳤다.
고성·속초의 불은 5일 오전 8시 15분, 강릉·동해 산불은 5일 오후 4시 54분께야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 대통령 "총력 대응" 지시…청와대·총리실 중심 신속 대응
문 대통령은 하루 새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두 차례 방문하며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챙겼다. 화재 발생 다음 날은 현장을 방문해 이재민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4일 저녁 산불이 발생한 뒤 4시간여만인 오후 11시 15분 관계부처에 '가용 자원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고, 1시간 후인 5일 오전 0시 20분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현장 상황을 보고받았다.
5일 오전 11시에는 위기관리센터를 재차 방문해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강원도 산불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오후 3시 40분 고성군 토성면사무소 대책본부와 천진초등학교 내 이재민 임시 주거시설, 장천마을 화재 현장을 잇달아 찾아 피해 주민들과 만났다.
문 대통령은 주말인 6일 오전에도 진화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으며 낮 12시 25분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이 총리 역시 특유의 꼼꼼한 지시로 관련 부처들의 대응을 신속하게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총리는 4일 화재 발생 2시간 20분만인 오후 9시 40분께 진화 인력·장비 총동원, 주민대피를 골자로 하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5일 오전 8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국가재난사태 선포를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힌 뒤 인명피해 최소화를 제1원칙으로 제시했다.
회의가 끝난 직후엔 곧바로 고성군 상황실로 이동해 현장 상황을 살피고 대피소와 화재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불길이 잡힌 이후인 6일 오전 9시에는 2차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정부 후속 조치를 잔불 정리, 이재민 돕기, 특별재난지역 선포, 복구 지원, 제도적 보완 등 5단계로 나눠 밝혔다.
이 총리가 단계별 대응방안을 수첩에 적어놓은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고속도로 밤새 밝힌 소방차 경광등…장관 교체기에도 소임 다한 공무원들
강원도소방본부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초기부터 전국 소방관들이 나섰다.
소방청은 최초 발생 1시간여 만인 4일 오후 8시 31분께 강원도 인근 서울, 인천, 경기, 충북 지역 소방차 출동을 지시했다가 이내 지시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81대를 필두로 충남 147대, 경북 121대, 충북 66대, 인천 51대 등이 밤새 고속도로를 환히 밝히며 강원도로 향했다.
서울, 경기, 인천, 충남, 충북, 경북, 세종, 대전본부 가용 차량·인원의 ½과 전북, 전남, 경남, 울산, 부산, 창원, 대구본부 가용 차량·인원의 ⅓이 긴급 호출을 받았다.
이렇게 달려온 소방관들은 한때 강원도까지 합쳐서 최대 3천251명, 차량 872대에 달했다.
소방 관계자는 "단일 화재로는 역대 최대 규모"라며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재난대응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장관 교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후방 지원에 나섰다.
5일 세종시에서 이임식을 열고 물러날 예정이던 김부겸 전 장관은 4일 밤늦게 고성으로 향해 현장에서 대응을 지휘했다.
진영 장관은 6일 0시를 기해 장관 지휘권을 넘겨받고 강원도에서 임기 첫날을 맞았다.
행안부는 5일 0시를 기해 재난대응 콘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하고 각 부처와 기관의 활동을 조율했다.


◇ 논란과 한계…"자연현상은 못 막아도 피해는 최대한 줄여야"
초대형 재난은 여러 논란을 낳았고 대응의 한계도 드러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4일 오후 청와대 업무보고 등을 위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상태였다.
회의 도중 산불이 시작돼 정 실장이 지휘를 맡으러 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의원들의 추가 질의가 이어진 탓에 정 실장은 한참이 지나서야 국회를 나설 수 있었다.
정 실장의 늦은 이석을 놓고 국회는 여전히 여야 간 책임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김철수 속초시장은 제주도 휴가 중 산불 사태가 벌어져 일찍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김 시장은 "'잘했다', '잘못했다'를 떠나 드릴 말씀은 없지만, 계획이 됐던 여행이고 떠난 다음에 일어난 상황인데 제 입장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하며 "현장을 보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은 강풍에 흔들리던 전선에서 튄 불꽃이 초기 발화 원인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근본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강풍을 막는 방법은 없지만, 강풍이 오더라도 시설은 문제없게 해야 한다"며 "주기적으로 청소해서 이물질이 쌓이지 않게 하고 사용 연한을 정해서 일정 기간 지나면 교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불 대응 주무 기관인 산림청과 육상재난대응 전문 기관인 소방청의 역할분담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공 교수는 "소방청이 대응 단계를 빨리 끌어올리고 인력을 집합시킨 것은 좋은데 산불 진화의 예산은 대부분 산림청으로 간다"며 "산불 진화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헬기인데 소방에는 헬기가 많이 있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헬기에 야간 투시경, 서치라이트, 자동비행조정장치 등을 부착해서 야간에도 위급하다면 헬기를 띄울 수 있어야 한다"면서 헬기를 못 띄우는 야간에 발생하자 대응에 한계를 드러낸 것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화재 현장의 동물 보호에도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민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사람과 함께 대피하지 못한 동물들이 타죽었다"며 "동물 구조, 대피, 피해 현황 파악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형 재난이 났을 때 정확한 기록을 남겨 비슷한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에 불 끄는 사람만 있고 이를 기록하거나 정리하는 노력은 부족했다"며 "단순히 촬영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기록하고 분석해서 추후 대책 수립에 활용해야 다른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j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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