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물컵 갑질'이 불러온 대한항공의 비극

입력 2019-04-08 11:05   수정 2019-04-0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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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물컵 갑질'이 불러온 대한항공의 비극
'공든탑'도 갑질 논란에 '와르르'…조양호 회장 별세로 이어져

(세종=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조양호 대한항공[003490] 회장이 8일 이국만리인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
수십년간 우리나라 굴지의 항공사 그룹을 이끌어온 그였지만 말년에는 일가족의 갑질 논란이 겹치면서 일생을 일군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고 검찰 수사를 통해 배임에 횡령 혐의까지 받고 경영권까지 박탈당하는 신세가 됐다.
최근 그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직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작년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이 결정타였다.

가뜩이나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는 한진일가는 물컵 갑질이 다시 터지면서 국민의 공분을 한몸에 샀다.
조 전 전무뿐만 아니라 아내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가족 일가의 또다른 갑질을 비롯해 횡령과 밀수 등 범죄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성난 여론은 쓰나미와 같이 그룹을 덮쳤고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272450]는 면허취소의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조 회장의 별세가 더욱 쓸쓸함을 더한 것은 올해가 대한항공이 창립 50주년을 맞는 경사스러운 해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물컵 갑질 이후 비난 여론과 검찰 수사까지 겹쳐 기념행사도 사내 직원들을 상대로 조촐히 치를 수밖에 없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창업주 조중훈 회장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출범한 이후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 '날개'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그 50주년을 기념하는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한항공이 1970년대 태평양과 유럽, 중동에 잇따라 하늘길을 열며 시장을 확대하고 1980년대에는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 지정돼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등 성장해 온 과정에서 조 회장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는 2000년대에는 국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 Team) 창설을 주도하는 등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공든탑'을 무너트린 것은 전세계를 뒤흔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환경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이었다.

2014년 큰딸 조현아씨의 땅콩회항으로 조 회장 일가의 제왕적 총수경영 체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조성됐다.
국민들의 뇌리에 땅콩회항이 아직 선명한 작년에 차녀 조현민씨의 물컵 갑질로 다시금 대한항공의 가족경영 체제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재벌 총수 일가가 대를 이어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룹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직원들에게는 갑질을 서슴지 않는 전근대적인 경영 형태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로까지 이어졌다.
이날 시장은 무심하게도 이날 조 회장이 별세를 '오너 리스크' 해소로 받아들였다.
조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8일 장 초반 대한항공과 한진[002320], 진에어 등 한진그룹 주가가 동반 강세를 보였다.
bana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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