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물 무단 폐기로 '안전불감증' 오명도…지역주민과 갈등 해소는 과제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60년 전인 1959년 2월 3일. 정부는 원자력 기술자립을 꿈꾸며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원자력연구소를 설립했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 정도였던 '가난한 나라'였지만,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며 최첨단 학문인 '원자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쟁의 비극이 남긴 폐허 위에서 국내 유일의 원자력 전문 연구기관이 출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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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는 현재 본원이 있는 대전 유성구로 자리를 옮겨 1987년과 1988년 각각 중수로 핵연료와 경수로 핵연료를 국산화하며 '기술자립'의 시작을 알렸다. 1995년에는 세계 10위 규모의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를 자체 기술로 구축했고, 1996년에는 우리나라에 최적화한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의 핵심설비인 원자로계통을 설계했다.
2009년에는 요르단 연구용원자로(JRTR) 사업을 수주하고, 2015년에는 소형 원자로 'SMART'(스마트) 구축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건설 전 설계(PPE) 협약'을 맺는 등 명실상부한 '원자력 공급국'으로 자리 잡게 됐다.
60년간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자립의 신화를 써 온 원자력연구원은 현재 세계 원자력 기술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원이 창출한 사회·경제적 부가가치는 총 164조1천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1980년대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을 이끌었던 김시환 유저스 기술연구소장(전 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은 "어려운 여건과 자원 부족을 극복하며 눈부신 성과를 이뤘다"며 "국민에게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연구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지난 1일 박원석 원장 취임 뒤 연구원은 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연구, 원전 안전·제염·해체 등에서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빅데이터·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융합연구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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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연구원이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방사성폐기물을 상습적으로 무단 처분한 것이 드러나며 인근 주민과 갈등을 겪고 있다.
연구원은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물을 빗물관으로 흘려보냈고 방사선 관리구역 안에서 쓴 장비를 무단으로 매각했다. 방사성물질에 오염된 콘크리트와 흙을 연구원 안에 방치하거나 몰래 묻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2017년 연구원에 19억2천500만원의 과징금과 5천6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연구원은 핵연료 물질을 허가 없이 보관해 작년에는 총 1억500만원의 과징금 및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계 인사는 "원자력연구원에 대해서는 안전문화와 책임감이 결여됐다는 평가가 많다. 지역주민이 연구원에 대한 불신이 높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작년 1월과 11월에는 연구원에서 각각 화재가 발생해 시민들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2011년에는 하나로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해 직원들이 긴급 대피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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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지난 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갈등 사례를 들며 대전 외에 '제3의 연구부지'를 물색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에 대해 대전탈핵희망은 보도자료를 통해 "밥그릇을 먼저 챙기려는 행태가 심히 우려스럽다"며 "박 원장은 방폐물 무단 유출 등 그동안의 사태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시민의 안전 대책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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