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서 한미정상회담·평양에선 北최고인민회의…남북미 정상 메시지 촉각
문대통령, 트럼프 만남 뒤 北과 접촉기회 모색할 듯…北 대외메시지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100년 전 4월 11일.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닻을 올렸다.
중국의 상하이라는 타국 땅에 문을 열었지만, 임시정부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향한 저항의 중심이었고 독립을 향한 전민족의 의지를 담았다.
그래서 정부는 오는 11일 100주년 행사를 성대히 기념함으로써 한국민의 정신을 지켜온 임시정부의 출범을 기릴 계획이다.
바로 그 기념일인 11일에 한반도는 공교롭게도 작년 평창에서 시작된 '해빙'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지의 중대 갈림길에 선다.
100년 전 그날이 일본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중대한 첫걸음이었다면, 11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과 평양에서 개최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앞으로 '핵없는 한반도'가 가능할지 가늠할 '빅 이벤트'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남북미 정상이 내놓을 메시지에 따라 제2차 북미정상회담(2월 27∼28일 하노이) 결렬 이후 난관에 봉착한 비핵화 협상이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을지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워싱턴에서 하노이 회담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는다.
양 정상이 정상회담에서 내놓을 메시지가 '대화'와 '압박' 중 어디에 무게를 싣느냐에 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선택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 한미 모두 북한을 협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북미회담이 조속히 재개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어 '대화'의 필요성과 의지를 강조하는데 정상회담의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외교 소식통은 9일 "정상회담의 특성상 구체적인 해법보다는 북미대화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기 위한 큰 틀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발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북미대화 재개의 돌파구가 열릴지는 불투명하다.
우선 북미 간 최대 쟁점인 제재완화에 있어 미국의 입장이 강경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한 방송에 출연해 "궁극적 목표가 달성될 때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경제 제재는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 행정부의 정책은 매우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미국의 이런 입장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유연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자칫 한미간 이견만 부각될 수도 있어 우리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 정상이 비핵화 방식에 있어 동일한 목소리를 낼지도 주목된다.
미국은 대북 인식이 강경해지면서 일괄타결에 가까운 '큰 그림'을 그리는 분위기가 강하고, 한국은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을 비핵화 방식으로 상정하고 있다.
다만 미국도 명시적으로 '단계적 이행'을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긴 어렵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는 게 우리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따라서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충분히 좋은 거래) 등으로 표현되는 초기 단계 비핵화 조치가 의미 있게 진행된다면 미국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북미가 우선 완전한 비핵화의 정의와 이를 위한 포괄적 로드맵(시간표)에 합의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한미가 공감하고 있어 조율에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 5일 미국과의 협의 뒤 귀국하면서 "(비핵화 논의의) 최종 목적지, 즉 '엔드 스테이트'나 로드맵에 대해서는 우리(한미)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며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도 한국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등을 계기로 대외 기조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5일 평양주재 대사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비핵화 협상 관련 브리핑에서 "우리 최고지도부가 곧 결심을 명백히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김 위원장의 입장 발표를 사실상 예고한 상태다.
북한이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노동당 정치국 회의나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등 의사결정 기구를 소집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대남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메시지를 내놓더라도 일단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본 뒤에 방침을 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에서 돌아온 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할 기회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 특사가 검토될 수도 있고 일각에선 오는 27일이 판문점선언 1주년이라는 점에서 이를 계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제기한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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