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의 봄' 영향도 받아…정국안정은 아직 불투명
(카이로=연합뉴스) 노재현 특파원 =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오마르 알-바시르(75) 수단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의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았다.
30년 동안 장기집권한 바시르의 퇴장은 군인들의 무력으로 이뤄졌지만 사실상 반정부 시위가 일궈낸 성과로 볼 수 있다.
작년 12월 중순부터 수단 국민은 줄기차게 바시르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고 경찰의 발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작년 12월 19일 수단 수도 하르툼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정부의 빵값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게 시작이었다.
수단 정부가 당시 빵 가격을 3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물가 급등에 대한 불만과 함께 그동안 누적된 국민의 응어리가 폭발한 것이다.
수단은 2011년 남수단의 독립으로 석유매장지역의 상당 부분을 잃으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단 정부가 시위대에 발포하면서 유혈참사가 이어졌고 시위는 바시르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빠르게 격화했다.
현지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3월 중순까지 시위대와 경찰, 군인들의 충돌 과정에서 최소 51명이 사망했다.
노조단체 '수단전문직협회'가 주도한 시위에는 의사를 비롯한 지식인층도 대거 참여했다.
그러나 바시르는 시위대의 요구를 일축해왔다.
그는 올해 1월 14일 "시위는 정부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유권자가 내년에 치러질 대선을 통해 통치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2월에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시위 참여자를 재판하기 위한 임시 사법기구인 비상법원을 구성했다.
수단 야당과 시위대는 바시르의 퇴진을 압박했지만, 군부가 바시르를 지지하는 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달 초 들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주말인 지난 6일부터 하르툼 등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는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시위대는 국방부 건물 주변에서 텐트 농성을 하면서 군인들에게 동참을 촉구했다.
군부는 시위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최루가스 등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현지 의사단체에 따르면 6∼9일 나흘 동안 시위 과정에서 최소 21명이 숨지고 150여명이 다쳤다.
특히 시위대를 도우려던 군인들도 여러 명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혈충돌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국제사회도 바시르 압박에 나섰다.
미국, 영국, 노르웨이 등 서방 3개국은 지난 9일 공동성명에서 "수단 당국이 대중의 요구에 진지하고 믿을만한 방법으로 응답할 때가 왔다"며 바시르에 정권 이양을 촉구했다.
바시르 퇴진을 요구하는 국내외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아와드 이븐 아우프 국방장관 등 군부가 쿠데타를 전격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군부 쿠데타를 끌어낸 수단의 반정부 시위는 8년 전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일 수단 시위와 관련, "2011년 아랍의 봄의 대규모 농성을 재현하려고 텐트를 쳤다"고 분석했다.
8년 전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등에서 시위대가 텐트를 치고 장기간 독재 타도를 외쳤던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수단 시위대는 '아랍의 봄' 때와 비슷하게 "국민은 정권의 몰락을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바시르의 30년 독재가 무너졌지만 수단 정국이 안정을 찾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는 바시르가 물러난 뒤에도 비슷한 군부 통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단체들의 연합인 '자유와 변화를 위한 연합'은 이날 국방장관의 발표가 나온 뒤 성명을 내고 "정권이 같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는 군사 쿠데타를 했다"며 "우리는 쿠데타 성명의 모든 내용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에게 군 본부 앞과 모든 지역, 거리에서 농성을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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