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 생활 열흘…"우울감 밀려오고, 국민적 관심 사라질까 두려워"
심리상담센터 관계자 "이재민은 물론 자원봉사자 심리상태도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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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불이 났을 때는 정신 없었지. 지금은 여기서 할 일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함만 밀려옵니다"
강원 동해안을 집어삼킨 산불이 난지 어느덧 11일이 지났다. 옷 한 벌 제대로 챙길 겨를 없이 불타는 집을 빠져나온 주민들이 대피소 생활을 열흘째 이어가고 있다.
14일 오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는 생각과 달리 한산했다.
임시 거주 텐트 곳곳은 비었고, 이재민으로 북적이던 TV 근처는 빈 의자들만 덩그러니 남았다.
현재 천진초교 대피소에 남은 이재민 42명은 임시 거주 텐트 22동에서 지내고 있다. 지난주 130여명이 텐트 52동을 가득 채운 것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재민들은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민간에서 제공한 연수원, 수련원, 리조트 또는 가까운 친인척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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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에 남은 이들은 외로움과 우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재민 왕주남(74)씨는 "먹을 것이나 잠자리 등은 그리 불편하지 않지만 답답한 마음은 더 커져간다"며 "대기업의 지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점점 뜸해지는데 산불이 국민 관심에서 사라져가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토성면 주민 함상애(79)씨는 "어제 옥수수를 심기 위해 산불 난 뒤 처음으로 집을 가봤다"며 "새까맣게 타버린 집을 보니 속이 터질 것 같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여기(대피소)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절반도 안 남아서 외로움에 우울함까지 밀려온다"고 호소했다.
산불 피해 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산불로 극심한 피해를 본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를 향하다가 빈 논에서 혼자 작업을 하는 주민을 만났다.
그는 "대피소(마을회관)에만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하려고 논에 나왔다"며 "이제 농사철인데 볍씨도 다 타버려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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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촌2리 마을회관에는 주민 11명이 머물고 있다.
대부분 승용차가 없어 이동이 불편한 대피소 대신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것이 가장 불편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불편함을 묻지 말고 앞으로 어떤 대책이 있는지 가르쳐달라"고 호소했다.
한 주민은 "평생 살아오던 터전을 순식간에 다 잃고 맨몸으로 도망쳤는데 아직 뚜렷한 원인과 대책도 설명해주지 않는다"며 "어제도 이낙연 총리가 다녀갔지만 어떤 대책과 보상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또 "산불에 대한 뉴스도 점점 줄어들어 거의 없는데, 이대로 관심들이 사라질까 두려움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산불 피해 주민들이 이 같은 답답함을 호소하자 재난 심리 회복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상담 지원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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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주 강원도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장은 "산불 초기에 트라우마 등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재민들이 있다"며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상담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재민뿐 아니라 재난 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집단심리상담 등도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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