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정 다른 대한항공·아시아나 동시에 부침…오너 체제의 한계?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김동규 기자 = 최근 잇단 총수 퇴진과 매각 작업으로 국내 양대 민간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창사 이래 유례없는 지배구조 개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세부적으로 따지자면 총수 일가 갑질 사건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유고(대한항공), 경영 부실에 따른 구조조정(아시아나) 등 각 사의 속 사정이 다르지만, 결국 약 50년 동안 한국 민간 항공업계를 이끈 오너 중심 체제가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아시아나, 30여년만에 금호 품 떠나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 금호산업[002990]은 15일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의결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돈은 약 1조3천억원에 이르고 당장 오는 25일 600억원 규모 회사채의 만기가 돌아오기 때문에, 핵심 계열사 아시아나항공을 팔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경영 부실에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전 회장은 이날 매각 결정 직전까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박 전 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뒤 그룹은 지난 10일 박 전 회장 일가의 금호고속 지분에 대한 담보 설정,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매각 등을 조건으로 채권단에 5천억원의 자금 수혈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채권단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그룹 자체의 3년간 자구계획과 박 전 회장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의 경영 개입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결국 이날 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과 함께 '백기'를 들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1일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이 시간이 없었나. 어떻게 보면 30년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서 "박삼구 회장이 물러나고 아들이 경영하겠다고 하는데 그 두 분이 뭐가 다른지"라고 반문했다.
박 회장이 지난 2006년 대우건설,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할 때에도 아시아나항공 자금 등을 끌어썼던 점을 상기해 보면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오너체제에 갖고 있던 회의적 시각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지난 1988년 금호그룹 계열사로 출발한 '제2 민항' 아시아나항공은 30여년 만에 그룹과 박 전 회장의 품을 떠나 새 주인을 찾는 처지에 놓였다.
◇ 대한항공, 오리무중 '포스트 조양호'
1969년 출범한 국내 최초 민간항공사 대한항공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가족의 다양한 '갑질' 사건으로 공분을 산 뒤 여론에 떠밀려 지배구조 '수술'이 시작된 경우다.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2014년),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사건(2018년), 조 회장의 270억원 횡령·배임 혐의 등이 잇따르자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자격을 박탈했다.
'설상가상'격으로 그가 지난 8일 미국에서 별세하면서, 대한항공 경영권을 되찾을 기회도 영원히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조 회장의 유고로 대한항공의 지배구조는 혼돈에 빠졌다.
재계나 증권업계에서는 대체로 조 회장의 아들 조원태 현 대한항공 사장이 조만간 새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조원태 체제'로 무난히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지분 상속, 경영권 승계가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현재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의 지분 가운데 조 회장 일가의 우호 지분은 모두 28.95%다. 조 회장의 지분 17.84%를 빼면, 조원태 사장(2.34%)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2.31%),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2.30%)의 지분이 크지 않은 데다 자녀 간 차이도 거의 없다.
앞서 현대·롯데 등 다른 그룹들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겪었던 '형제간 다툼'의 불씨가 남아있는 셈이다.
최소 1천7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조 회장 지분에 대한 상속세 마련 과정에서 자녀들이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도 있어 향후 대한항공 지배구조 개편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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