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비참한 한국노동자들"…100년전 임시정부의 호소

입력 2019-04-16 07:55  

"세계서 가장 비참한 한국노동자들"…100년전 임시정부의 호소
1919년 7월 17일 임정 파리위원부가 작성…조소앙·이관용 친필서명 담겨
스웨덴서 한인유학생이 발굴한 만국사회당대회 참가희망 요청서 33년 만에 공개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일본 경찰은 한국에서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하며 일본 자본가들의 이익만 지켜준다. 세계에서 한국 노동자들보다 더 비참한 상황은 없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루체른 만국사회당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독립운동가 조소앙·이관용 선생의 친필 서명을 담아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국제적 관심을 촉구한 서한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자료는 1980년대 후반 독일에 유학했던 정용대 박사(62)가 당시 스웨덴의 한 노동사 자료실에서 발견해 사본을 간직해오다 1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국내 학계에 그동안 소개되지 않은 이 서한은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대표 김규식)가 1919년 7월 17일자로 스위스 루체른 만국사회당 대회(국제사회주의대회) 조직위원회에 보낸 1장짜리 요청서로, 프랑스어로 쓰였다.
식민통치의 현실과 이 대회에 임시정부가 참가를 희망하는 이유가 소상히 담겨있어 일제의 탄압과 착취 속에 한국의 노동자들과 임시정부가 국제사회주의자들과 연대해 독립을 쟁취하려는 열망을 잘 드러내는 사료로 평가된다.
정 박사가 제공한 서한의 사본에 따르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는 "1905년부터 일본의 압제를 당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불운한 운명에 대해 여러분들은 잘 알지 못하실 것"이라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과 일본 정부의 (가혹한) 방식은 유럽인들이 아는 바를 초월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선 모든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이 심한 탄압을 받고 있어 노동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인은) 권리를 지켜낼 수단을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일본은 어떤 보상도 없이 노역을 강요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러면서 "일본 경찰은 한국에서 절대적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나라의 모든 부(富)를 수탈해가는 일본 자본가들의 이익만을 지켜주고 있다. 세계에서 한국의 노동자들보다 더 비참한 상황은 없다"고 했다.


임정은 이어 "현시점에서 우리 국민의 모든 살아있는 세력들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만국사회당 대회에 참가해 요구사항을 널리 알리고 지지를 확보하고 싶다는 뜻을 강하게 피력했다.
타자기로 작성된 이 공식 서한의 맨 아랫부분에는 독립운동가 조소앙·이관용 선생의 친필 서명이 담겼다.
조소앙은 한자로 자신의 본명 '조용은'(趙鏞殷)과 영문 이니셜 서명을 함께 적었고, 이관용은 'K. Lee'라고 사인했다. 서한 맨 위에는 '임시정부 파리위원부'(LA MISSION COREENNE PARIS)와 파리 시내의 주소도 함께 적혀 있다.
임시정부 파리위원부는 이런 노력 끝에 1919년 8월 1∼9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만국사회당 대회(국제사회주의대회·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nference)에 조소앙과 이관용을 파견해 25개국의 사회당 계열 참가자들을 상대로 호소한 끝에 마지막 날 한국 독립 결의문을 채택하는 데 성공했다.
정용대 박사는 1986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동운동사 아카이브(Arbetarroerelsens Archiv)에 소장된 브란팅 씨의 유품에서 자료들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는 독일 마르부르크대 정치학 박사과정에 유학하던 당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국제사회사연구소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발견한 루체른 만국사회당 대회의 한국 독립 결의문 등 유럽에 흩어진 우리 독립운동사 사료들을 묶어 1990년대 초반 국내에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서한은 당시 여러 사정으로 소개하지 못해 그동안 미공개 상태였다고 전했다.
정 박사는 "30년 전에 유학하면서 제2의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유럽 각국을 돌며 독립운동사 자료들을 찾아다녔다. 당시에 발견해 놓고서도 지금까지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이 자료가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재조명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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