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 해당…대통령 재가만으론 불가능"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고용노동부는 17일 노동자 단결권 강화를 포함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이나 국회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대환 노동부 국제정책관(국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ILO) 제87호 협약 등 결사의 자유 협약은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이므로 대통령이 비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 협약과 상충하는 법 개정 내지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정부가 법 개정에 앞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으나 최종적으로는 국회 동의가 있어야 비준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비준 동의안 제출만으로 조약 비준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관계법을 개정한 다음, 협약을 비준한다는 이른바 '선(先) 입법 후(後) 비준'의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법 개정 논의가 난항을 겪자 노동계를 중심으로 ILO 핵심협약부터 비준하자는 '선 비준 후 입법'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ILO 핵심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국내법을 정비해도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대환 국장은 '선 비준 후 입법' 주장을 크게 두 가지로 구별했다. '협약 비준권은 대통령에게 있으므로 국회 비준 동의 없이 대통령 재가로 협약을 비준하면 된다'는 주장과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이후 관련법을 개정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주장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김 국장은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협약 비준권이 있으나 예외적으로 국내법과 상충해 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 동의는 대통령이 조약을 비준하기 전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며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경우 대통령 재가만으로 비준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 국장은 ILO가 국내 노조법 등이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에 위배된다고 여러 차례 지적한 점도 거론했다. ILO 핵심협약이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현재 양대 노총이 요구하는 선 비준 후 입법은 김 국장이 언급한 두 번째 주장에 해당한다. 정부가 법 개정에 매달리지 말고 비준 동의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첫 번째 주장과는 달리 법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정부 안팎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 동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하지 않고 국회에 비준 동의안을 제출할 경우 부결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1년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으로 분류되는 8개 가운데 4개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준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ljglor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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