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소규모 테마 여행 늘어…"안전관리 여전한 숙제"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이세연 곽효원 인턴기자 = 학생 수백명이 관광버스 수십 대에 나눠 타고 설악산이나 경주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구경하고 학교가 미리 정해둔 숙소에서 자던 수학여행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계기는 수학여행이라는 단어가 국민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남게 만든 사건인 세월호 참사. 2014년 사고 이후 한동안 수학여행 자체를 자제하다가 대안으로 소규모 테마 체험 활동이 떠오르면서 이를 따르는 학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하고 교육적인 수학여행을 목표로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된 소규모ㆍ테마형 여행을 하는 학교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대규모(150명 이상) 단체 여행을 떠나는 학교는 2015년 전체 학교의 12.9%를 차지하던 것에서 지난해 4.9%로 줄었다. 반면, 100명 이하 소규모 여행을 하는 곳은 68.8%에서 84.2%로 증가했다.
교육부 조훈희 교수학습평가과장은 "소규모 테마 체험 활동이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단순한 권장 사항이었으나 2014년 7월 이후 수학여행 운영 원칙으로 매뉴얼에 명시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 작은 여행이 바꿔놓은 장면들…"이제 버스에서 안 내리는 학생 드물죠"
"선생님이 짜준 틀도 좋지만 그런 수학여행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다 경험해봤다고 생각해요.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해 체험 활동을 하는 2박3일 내내 친구들과 힘든 일, 즐거운 일 모두 함께 겪다 보니 조금 더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었어요"
지난해 친구들과 함께 전남 영광ㆍ강진ㆍ여수에서 역사기행 등을 하고 온 광주자동화설비공업고 2학년 김승아양은 '전교생이나 같은 학년 학생이 모두 참가하는 수학여행보다 소규모 체험 활동이 어떤 점이 좋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광주자동화설비공업고는 2015년부터 매년 가을에 학생 6∼10명으로 이뤄진 소그룹이 지도교사와 함께 2박3일간 체험 활동을 하는 것으로 수학여행을 갈음하고 있다. 활동 테마는 보통 기업 탐방 등을 진행하는 진로 탐색, 역사ㆍ문화 탐방, 봉사활동, 지리산 종주와 같은 극기 활동 등으로 구성되는데, 매년 학생들이 낸 아이디어 중에 학교 선정위원회 심사를 통해 결정한다.
9월 체험 활동을 앞두고 학생들은 5월부터 가장 관심 있는 테마를 고르고 일정을 짜는 등 준비에 참여한다. 체험 활동이 끝나면 보고회를 통해 각자의 활동을 공유하고 우수 활동 팀을 선정해 시상식도 한다. 또한 매년 사례집도 묶어낸다.
김승아양의 팀은 지난해 3등 상을 받았다. 김양은 "직접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팀원들과 갈등도 많았지만 다 새로운 경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주도적으로 계획해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자체가 뜻깊은 활동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학교 1학년 부장인 강효주 교사는 "기존의 수학여행에서는 관람지를 대충 둘러보거나 버스에서 아예 내리지 않는 등 적극적이지 않은 아이들이 눈에 띄었는데 학생 주도로 진행하는 체험 활동은 흥미도 책임감도 높다"면서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섭외하고 차표와 숙소도 직접 예약을 하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뭔가를 진행해본다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교사는 안전성 등을 점검하는 뒷받침 역할을 한다"고 전했다.
경북 칠곡 북삼고도 학생 그룹이 계획을 짜서 따로따로 여행하는 방식의 단체 활동을 다음 달 27∼30일 계획하고 있다.
이 학교 2학년 교사는 "아이들이 먼저 이런 프로그램을 경험한 선배들 이야기를 듣고 단체 수학여행보다는 소규모 활동에 참여하기를 원해 계속 시행하고 있다"며 "다녀온 학생들이 동영상 제작 발표회 등 미션을 자발적으로 만들어 수행하는 등 얻어가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 "교사 부담은 ↑…안전관리는 여전한 숙제"
수학여행의 변화에 대해 인천시교육청 안전교육팀 관계자는 "단체 여행은 아무래도 아이들의 흥미도 떨어지고 선생님 한 명당 담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안전상 문제가 생길 수 있는데 10명 내외 소규모 테마 활동은 아이들이 선생님 눈에 한 번에 들어오는 장점이 있다"며 "안전관리도 수월할 수 있고 선생님과 학생이 공유할 수 있는 시간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러한 형태의 여행은 선생님들이 테마별로 답사를 모두 가야 하는 등 관리가 힘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북 칠곡 북삼고 교사도 업무량이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수 여행에서 더 많이 다치고 소수에서는 덜 다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고는 똑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소규모 활동이 더 안전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부 조훈희 교수학습평가과장은 소규모 활동의 안전관리에 대해 "야간 시간대 학생 지도를 맡거나 유사시 응급구조 등을 담당하는 안전요원이 여행에 따라가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학여행과 소규모 활동의 장점을 합친 '절충형'도 등장했다. 충북 옥천여중은 한 학년이 다 같이 출발해서 둘째 날 팀별로 나눠 테마 여행을 한다. 1학기 동안 학생들을 주축으로 여행 과정을 준비한 뒤 올해 가을 이런 방식으로 부산과 남해안 일대를 여행할 예정이다.
체험 활동 테마를 교과와 직접 연계해 학습형으로 추진하다 보니 학생들이 흥미를 잃는 사례도 있다. 자동화기계과는 제철소에, 전기과는 화력발전소에, 전자통신과는 반도체회사에 찾아가 진로 탐색 활동을 벌이던 울산공업고는 올해부터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장소를 여행하기로 방침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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