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부문화센터 글씨예술가 강병인 작품 전시회

(김해=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 '…슬프다. 조선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마는 조선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수이 여기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리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앞글은 외국인으로 평생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 선생의 말이고, 뒷글은 18세의 나이로 대한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숨진 유관순 열사가 남긴 말이다.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한글독립운동가 이윤재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 등 일제 강점기 중국과 미국 등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국내에서 만세운동과 우리말 운동 등을 하며 전 재산을 팔고 목숨을 던져 실천한 독립운동가·열사 24인의 '피 끓는 말씀'이 글씨로 되살아났다.

김해서부문화센터 스페이스 가율은 오는 27일까지 '독립열사 말씀 글씨로 보다' 전(展)에서 피 끓는 말씀을 옮긴 글씨 30점을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및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마련했다.
글씨는 '멋글씨 예술가'로,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강병인 작가가 썼다.
전시장에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한독립을 외치던 열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의 목소리가 담긴 글씨가 가득하다.
한 말씀, 한 말씀을 읽어나가면 어느덧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는 것을 느낀다.
천도교 지도자로 3·1만세운동의 주역인 손병희(1861∼1922) 선생은 만세운동을 왜 해야했는지를 설명해준다.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 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
일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 마차에 폭탄을 던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됐던 강우규 열사가 사형 직전 남긴 말은 차마 글로써 읽는 것이 부끄럽다.
'단두대 위에 홀로 서니 춘풍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말은 많이 소개됐지만, 개인의 처신을 조심하라는 말은 새롭다.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
'이익을 보아도 정의를 먼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주어라'란 말씀은 언제나 심금을 울린다.

독서를 권하는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는 말을 강병인 작가가 서예와 디자인을 섞어 '책' 한 자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안 의사가 사형에 처하기 전 유언으로 남겼다는 '동포에게 고함'에는 원래 넷째 손가락을 자른 의사의 손도장이 찍혀 있었다.
작가도 의사의 결의를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손가락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썼다.
강 작가는 열사와 독립운동가들의 말씀 분위기에 따라 글씨체를 바꿔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출입구 오른쪽에 걸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남긴 '얼렁뚱땅…'으로 시작하는 말씀을 옮긴 글은 작가가 최대한 붓으로 얼렁뚱땅하는 분위기를 살렸다.
글씨체를 보며 미소를 머금던 관객은 내용을 음미하며 잠시 발길을 멈추게 된다.
'한글이 목숨'이라고 했던 외솔 최현배 선생의 말씀, 이극로·윤동주·한용운·윤봉길 등 말씀은 짧아도 그 글과 외침 앞에 서면 선생의, 열사들의 치열했던 삶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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