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정원 '추경원' 위치는 창경궁 문정전 남쪽"

입력 2019-04-21 09:33  

"사라진 정원 '추경원' 위치는 창경궁 문정전 남쪽"
오준영 씨 학술지 '문화재'에 논문 발표…"일제강점기 훼손"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시대 동궐(東闕)에 존재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왕실정원인 추경원(秋景苑)이 창경궁 문정전 남쪽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조(재위 1724∼1776)가 함춘원(含春苑), 상림원(上林苑)과 함께 언급한 추경원은 조선 궁궐 내전(內殿) 권역 정원 중 유일하게 이름이 부여된 사례로 알려졌으나, 지금까지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대학원에서 전통조경학을 공부한 오준영 씨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간하는 계간 학술지 '문화재' 최신호에 실은 논문 '동궐 추경원의 조영과 변천에 관한 고찰'에서 추경원이 오늘날 문정전과 숭문당 남쪽이자 창덕궁 수강재 동쪽 녹지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추경원은 창덕궁에 있는 세자 생활공간인 저승전(儲承殿)을 중건한 인조(재위 1623∼1649) 대 이전부터 운영한 왕실정원으로, 정조 13년(1789)에 추경원 담장이 무너지자 훈련도감 장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일성록'에 남았다.
학계에서는 그동안 추경원 위치를 함인정 남쪽 혹은 수강재 남동쪽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오씨는 두 공간에 대해 "정원으로서 면모가 뚜렷하지 않고, 전각 주변에 형성된 마당처럼 일반적 형태의 개방적 공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경원이 조선시대 중앙군인 오위(五衛)의 최고 군령기관인 도총부와 밀접한 곳에 있었다는 기록과 수강재 행각문인 협상문이나 숭문당과 인접했다는 자료를 통해 위치를 찾았다.
오씨는 "동궐도형에서 도총부, 협상문, 문정전, 숭문당과 마주한 'ㄴ'자 형태 대규모 공간이 추경원일 것"이라며 "추경원은 완결된 단계의 모습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으나, 1909년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면서 변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추경원에는 1911년 1호 온실이 건립됐고, 1915년에는 4층 규모 도서고가 세워졌다"며 "1930년대 후반 제작한 '창덕궁 평면도'를 보면 1호 온실, 도서고, 맹수실이 들어서서 사실상 정원이 소실(消失)됐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추경원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오씨는 "추경원이 신주 매립 장소 또는 궁중 연향의 보조 공간으로 활용된 전례는 있지만, 왕실 구성원이 특정 목적에 따라 이용했다는 사실은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담장으로 한정된 대지에 교목 위주 나무를 심었다는 점에서 후원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가을 경치라는 정원 명칭을 고려하면 낙엽활엽수가 많았던 공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추경원이 창덕궁 낙선재 뒤편에 조성된 서고동저형 지세의 끝에 입지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조선 후기에 추경원 일대 지형은 현재보다 최소 3∼5m가량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추경원은 궁궐 바깥에 있던 외원과 구성 형식과 입지 특성이 유사하다"며 "각별한 보호가 요구되는 땅을 개발행위가 제한된 녹지공간으로 운영함으로써 본연의 지형을 보존하고 지맥(地脈)을 배양했다고 판단한다"고 역설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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