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 러시아 스캔들 특검보고서 일화 소개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보기관 수장들을 대상으로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와 관련, 'SOS 요청'에 나섰던 것으로 21일(현지시간) 알려졌다.
AP통신은 지난 18일 공개된 로버트 뮬러 특검팀의 수사 결과보고서 편집본을 통해 드러난 관련 일화 등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정보기관들을 폄훼하며 수장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던 행보들에 비춰 매우 상반되는 대목이라고 이 통신은 보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뮬러가 특검으로 임명되기 약 두 달 전인 2017년 3월 26일 마이크 로저스 당시 국가안보국(NSA)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연계 관련 보도는 '허위'라면서 관련 보도를 반박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이에 로저스 당시 국장과 바로 옆에 있었던 리처드 레짓 당시 부국장은 깜짝 놀랐다. 그 후 레짓 전 부국장은 관련 대화 및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대한 메모를 작성했다. 그는 "40년간 정부에서 일해보면서 경험한 가장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로저스 당시 국장에게 전화를 건 시점은 제프 세션스 당시 법무부 장관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지휘에서 손을 떼겠다고 해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한지 몇 주 안 돼서였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제임스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3월 20일 하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대선 기간 트럼프 캠프와 내통해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에 대해 공식으로 수사 중이라고 확인한 직후이기도 하다.
취임 초기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NSA에 대한 폄훼 발언으로 이 정보기관을 공개적으로 소외시키고 있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공개적으로는 각을 세우면서, 이면에서는 지원사격을 요청했던 것이다.
특검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로저스 당시 국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대해 좌절감을 표현하면서 이로 인해 러시아와의 관계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저스 국장은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지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정보기관 수장들에게도 비슷한 요구들을 다수 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22일에는 백악관 회의가 끝난 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에게 따로 남으라고 한 뒤 자신과 러시아 간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는 걸 공개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특검보고서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한 정보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회의를 시작하면서 '러시아와의 공모는 없었다'는 내용의 언론 성명을 발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경우도 두 차례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스캔들 수사 관련 이야기를 계속 꺼내자 코츠 국장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일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지 수사에 관여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특검 보고서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국자들에게 자신은 러시아와 관련해 문제 될만한 일을 한 게 없다는 이야기를 널리 전파해달라고 자주 주문했다면서도 2017년 3월 22일 백악관 회의 후 따로 남으라고 요청받은 기억은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츠 국장은 특검팀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FBI 수사와 관련해 코미 당시 국장과 이야기해보라고 지시한 일이 없다고 진술했으나, 정작 코츠 국장 주변 인사들이 기억하는 그의 전언은 이와 달랐다.
특검 보고서에 따르면 코츠 국장의 참모인 마이클 뎀프시는 코츠 국장이 당시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수사 혐오에 대해 혼잣말을 하는 것'과 '수사 중단을 위해 뭔가를 하라고 지시하는 것' 사이에 그 어딘가 언저리쯤에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고 진술했다. 뎀프시는 코츠 국장이 당시 '진행 중인 FBI 조사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뮬러 특검은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 당국자들에게 FBI의 러시아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개입하라고 요청하거나 지시했다는 증거가 확립되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요청을 받은 당국자들이 이를 부적절하게 수사에 개입하라는 지시로 해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정보기관 및 그 수장들과 마찰을 빚어왔다.
지난해 7월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면전에서 러시아 대선 개입을 결론 내린 정보당국의 판단 보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을 옹호했다가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하자 그제야 "미국의 정보기관에 완전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진화에 나선 바 있다.
또한 지난 1월 말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서 코츠 국장 등 정보기관 수장들이 북한과 이란 등의 대미(對美) 안보위협을 놓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피력하자 트위터를 통해 "순진하다", "어쩌면 학교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공개적 비난에 나섰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코츠 국장에 대해서는 경질설이 불거진 바 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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