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외국인 타자들 이구동성 "박종훈의 희소성, 도전할만해"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잠수함 투수 박종훈(28·SK 와이번스)이 고교 시절부터 품은 '빅리거의 꿈'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언젠가는 꼭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고 싶습니다."
박종훈은 "보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SK에서도 중간으로 이동하라면 기꺼이 받아들인다"며 "메이저리그에서 던질 수만 있다면 어느 자리라도 좋다"고 말했다.
아직 박종훈 쪽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다. 박종훈은 일러도 2020년 시즌을 마쳐야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국외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이미 미국 구단은 움직이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동아시아 스카우트 사이에서 '박종훈'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몇몇 스카우트는 박종훈의 투구를 분석해 구단에 보고했다.
박종훈은 "나는 모르는 이야기"라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메이저리그는 많은 야구 선수들이 꿈꾸는 무대다. 나도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배처럼 미국에서 한국 야구를 알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 "박종훈이라면 통할 텐데"…외국인 타자의 권유 = 박종훈은 군산상고 재학 중에 미국 프로구단의 영입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KBO리그 신인 지명회의에 나섰고 2차 2라운드 전체 9순위로 SK 유니폼을 입었다.
박종훈은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 등 동갑내기 친구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걸 보면서 부러웠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KBO리그에서 더 성장하길 바라셨다"고 떠올리며 "당시 미국으로 직행했던 친구 중에 국내로 돌아온 선수가 많다. SK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있다. SK에 입단한 건, 정말 좋은 일"이라고 했다.
KBO리그에서 자리 잡으면서 빅리그에 대한 꿈은 더 커졌다. 주위에서도 박종훈의 도전 심리를 자극한다.
외국인 타자들 사이에서는 '박종훈은 충분히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볼 만한 선수'라는 말이 나온다.
박종훈은 KBO리그에서 가장 낮은 릴리스 포인트를 가진 투수다. 오른손등이 마운드 바로 위를 지나갈 정도로 낮은 위치에서 공을 던진다.
아직 박종훈을 상대하지 않았지만,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는 "미국에도 잠수함 투수가 있지만, 박종훈처럼 독특한 투구 자세를 가진 투수는 상대한 적이 없다. 정말 특이하다"라고 했다.
박종훈은 지난해 외국인 타자를 상대로 피안타율 0.250(56타수 14안타)으로 잘 던졌다. 빅리그를 경험해 본 외국인 타자 중 박종훈에게 직접 "미국 무대에 도전해보라"고 권한 이들도 있다.
박종훈은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몸을 낮추면서도 "빅리그에서 던지는 꿈은 계속 꾸고 싶다. 내게는 확실한 동기부여도 된다"고 했다.
◇ "독특한 내 폼, 아직 만들어가는 중" = 박종훈은 '다른 투수의 투구 동작'을 자주 화두에 올린다.
특히 '안정적인 폼을 지닌 잠수함 투수'에게 자주 부러움을 표한다.
최근 NC 사이드암 박진우(29)의 투구를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박종훈은 "박진우 선배는 정말 부드럽게 공을 던지더라. 투구 동작을 보면서 구종을 짐작하기도 어려웠다"며 "정말 인상적이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곧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매 경기 투구 동작이 조금씩 달라진다. 공을 놓는 시점이 흔들리는 날에는 제구도 엉망이 된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박종훈도 점점 자신만의 투구 동작을 완성해가고 있다.
박종훈은 2017년 데이브 존 당시 SK 투수 코치에게 '투구 중 한 번 멈추는 동작'을 배웠다. 그는 "존 코치님의 조언에 따라 투구 동작을 조정하면서 제구가 한결 나아졌다. 공을 던지는 것도 더 편해졌다"고 밝혔다.
중, 고교 시절 박종훈에게 제대로 된 '잠수함 투수의 투구 동작'을 가르쳐 준 지도자는 없었다. 지도자들에게도 잠수함 투수는 낯설었기 때문이다.
혼자 고민하던 박종훈은 SK에 입단한 뒤, 당시 한국 최고의 잠수함 투수로 꼽히던 정대현을 만나 '잠수함 투수의 기초'를 다시 배웠다. 이후에도 많은 코치, 선배들의 조언을 받았다. 조언의 내용은 달랐지만, 결론은 같았다. "이런 투구 동작으로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박종훈, 너뿐이야."
◇ "힘쓰면 시속 140㎞는 넘기죠" = SK 불펜에는 투구 후 바로 구속, 회전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랩소도 머신이 설치돼 있다.
박종훈은 최근 불펜에서 오버핸드스로 동작으로 공을 던져봤고 최고 시속 139㎞까지 찍었다.
그는 "힘 제대로 주고 던지면 시속 140㎞는 그냥 넘기죠"라고 웃었다.
하지만 박종훈은 '구속'이 자신의 무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박종훈은 평균 시속 119㎞의 커브와 132㎞의 변화무쌍한 직구를 반반 섞어 던진다. 직구는 양옆으로 휘는 각도가 상당하고, 커브는 타자에게 '홈플레이트에 다가올수록 떠오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는 "구속이 상승하는 것보다 내가 가진 공을 지금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던지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구가 흔들려서 허무하게 볼넷, 사구를 내준 기억이 홈런을 내줄 때보다 더 아프게 남았다"고 했다.
출발 지점이 다르고, 변화가 심한 박종훈의 공에 '정확도'까지 생기면 위력은 배가될 수 있다.
최근 KBO리그에는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직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가 늘었다. 언더핸드스로인 박종훈은 그들과 다른 유형의 투수다.
박종훈은 "시속 150㎞를 던지는 투수는 '잠수함'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초라해진다"고 웃었다. 다른 투수를 예우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KBO리그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공을 던지는 투수의 자부심'도 담겼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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