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나는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몇 가지 단서, 내 경험과 추론들을 바탕으로 그날의 장면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중견 소설가 권여선의 신작 장편 '레몬'(창비 펴냄) 도입부에서 화자 다언이 한 말이다. 다언은 고등학교 3학년, 열아홉 살 나이에 생을 마친 해언의 동생이다.
이 사건 범인은 소설 속에서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언은 8년이 지난 후 이 '콜드 케이스'(미제사건) 범인을 찾아 나서고 17년 만에 주요 용의자 중 하나인 '한만우'와 마주한다.
미스터리 장르 기법을 차용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서사는 차분하다.
소설은 다언이 한만우 집을 찾아가 만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제목인 '레몬'의 색깔은 다언의 언니가 죽기 직전 입은 원피스 색깔이면서 한만우 집에서 함께 먹은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를 연상케 한다. '레몬'은 다언이 따르던 선배가 쓴 시에도 등장하는 단어다.
원래 2016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실은 중편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장편으로 보완한 작품인데, 레몬 빛깔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제목이 '레몬'으로 바뀌었다. 중편 작품은 이듬해 동명 연극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다언은 언니는 물론 자신의 삶조차 파괴한 한만우를 직접 만나 어떻게 복수할까.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삶의 의미를 '인간적으로' 묻는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김다언이 한만우 집에 들어서는 장면에서 권여선 소설이 보여주는 문학적 깊이는 정말 놀랍다"면서 "거기에는 전율할 정도로 생생한 인간 진실의 호흡이 있다"고 말했다.
권여선은 1996년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이전까지 '안녕 주정뱅이'를 비롯한 5권 소설집과 2편 장편소설을 펴냈다. 이상문학상, 오영수 문학상, 동리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8쪽.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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