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생활 해봤으면 알텐데…오늘은 '회사 가기 싫어'

입력 2019-04-23 08:00  

조직생활 해봤으면 알텐데…오늘은 '회사 가기 싫어'
캐릭터·에피소드 현실감 충만…PD "날 객관화하고 상대 이해하는 시간되길"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제가 이걸 왜 해야 하죠?" "자네도 내 나이 되면 이해할 걸세."
대한민국 1천680만 직장인이라면 이 두 가지 대사는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하다.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면 철딱서니 없는 신참, 가운데서 치이고 또 치이는 중간 관리자, 그리고 꼰대로 불리는 상사까지 대부분 비슷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KBS 2TV 화요극 '회사 가기 싫어'는 드라마인 듯 다큐멘터리인 듯 '양다리'를 걸친 채 현실 속 회사를 생생하게 조명한다. 지금은 잠시 휴식기인 MBC TV '무한도전'에서 선보인 '무한상사'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현실에 가깝다.


작품 배경이자 문구류 회사인 한다스는 전형적인 '오피스'다. 이 회사의 하루는 매일 오전 8시 50분 '한다스 체조'를 직원들이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직급별로 사무실 내 칸막이 높이가 서로 다른 것도 깨알 같은 현실 묘사이다.
등장인물들 역시 어느 조직에 대입해도 부합한다.
매주 사내 문화 개선을 외치지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이사부터 사장의 아우라가 느껴져 너도나도 피하는 사장 비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조용한 부조리를 실천 중인 부장, 부하들에게는 무능하고 상사들에게는 충성스러운 과장, 일 처리는 완벽하지만 인간미 없는 대리, 열정 넘치는 초고속 승진 차장, 막내 딱지를 떼기만 기다리는 사원, 눈치를 주든 말든 일단 퇴근하고 보는 신입까지….


그냥 일상을 보여주는 것뿐인데 보고 있으면 은근히 감정이 동요한다. 모든 에피소드가 내 일, 네 일, 우리 일인 덕분이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싼 갈등부터 직장 내 라인 타기까지 모든 조직이 겪는 일들이다.
3년 차 사원 유진(소주연 분)은 1990년대생 신입사원 지원(김관수)이 입사하면서 드디어 막내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콧대 높은 지원에게 돌아오는 말은 늘 "제가 왜 해야 하죠?"이다. 그러는 사이 과장 상욱(김중돈)은 "빨리 자료를 넘기라"며 성화다.
하루살이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조직에 갑자기 등장한 30대 차장 백호(김동완)는 "노 테 린다스, 포기하지 말자는 제 좌우명이다"라며 밝게 인사한다. 부장 영수(이황의)가 제일 긴장한다. 백호가 자신의 책상을 옆으로 밀어내자 백호와 신경전을 벌이기까지 한다.
바로 옆 동네 회사, 나아가 우리 회사를 옥상에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에 더해, 이따금 화면에 등장하는 사원들의 인터뷰는 점심 후 카페에서 동료들과 수다 떨며 상사, 후배를 뒷이야기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또 예상치 못한 시점에 등장하는 내레이션, "직장인들은 모두 권력의 피라미드를 사무실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같은 대사는 오늘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도 한다.


물론 이 작품에 위로와 공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B급 감성' 가득한 자막과 실험 정신 가득한 현실 풍자 같은 요소는 웃음을 선물하며 드라마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에서는 감동도 준다.
'회사 가기 싫어'를 연출하는 조나은 PD는 23일 "사람 사는 데 정답은 없고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도 없다"라며 "서로 다른 입장을 살피면서 나를 객관화해보고, 상대 입장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실감을 더 주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룩을 선택했다. 캐릭터들은 직장인 자문단을 통해 만들어진 내용으로 설정했다. 여기에 시대성(1990년대생 신입사원)과 판타지(시니어인턴)를 반영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넣기도 했다"라며 "구조조정의 칼을 맞은 '한다스 영업기획부의 생존기'라는 전체 플롯이 있지만 회별로도 즐길 수 있게 한편한편 완결된 구성을 추구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키워드는 역시 '공감'이다. 이 작품을 보는 것이 당장 내게 닥친 사내에서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할지라도, 늦은 밤 맥주 한잔하며 받는 이 질문은 마음을 울린다.
"당신은 왜 회사에 가기 싫으신가요?"
lis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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