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에 9연패 끝 첫 승…"마음을 비우니 이기더라"
(양양=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이동훈(21) 9단이 달라졌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언뜻 겉으로 보기에 큰 변화는 없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동훈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느끼며 웃음도 되찾았다.
22일 강원도 양양 쏠비치 리조트에서 이동훈을 만났다. 이동훈이 큰 장벽을 무너뜨린 날이다.
그는 쏠비치 리조트 특별대국실에서 열린 제20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 3번기 2국에서 신진서 9단에게 246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뒀다.
앞서 8일 열린 결승 1국에서 신진서에게 패했던 이동훈은 이 승리로 맥심배 우승의 불씨를 살려냈다. 둘은 오는 27일 결승 3국에서 우승컵을 둘러싼 마지막 승부에 나선다.
또 이동훈은 신진서에게 9전 전패로 열세에 있었으나, 신진서 상대 첫 승리를 거두며 '신진서 콤플렉스'도 극복했다.
이동훈은 "신진서에게 5판을 졌을 때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둑이 좋을 때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실수가 나오더라"라며 "오늘도 상대 전적 부담감이 있었지만, 최대한 생각을 안 하며 내가 원하는 바둑을 둬서 이겼다"고 말했다.
이동훈은 욕심이 앞서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맥심배도 결승 1국을 졌으니 오늘 2국도 '내가 졌다' 생각하고 과감하게 두려고 했다"며 "신진서에게 1승을 따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맥심배 우승도 하고 싶다. 그러나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다"며 "마지막 판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바둑을 두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맥심배 결승 2국 승리는 이동훈이 최근 단행한 변화가 가져온 소기의 성과다.
이동훈은 지난달부터 홀로 바둑을 공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 바둑 국가대표팀 연구실에는 나가지 않고 있다.
그는 "혼자 공부하고 있다. 어디 나가서 공부하지는 않는다. 주로 인공지능으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하니까 마음이 더 편하다"고 덧붙였다.
이동훈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단체 생활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도 커서 심리적 에너지 소모가 컸다.
그러면서 바둑도 어려워졌다.
이동훈은 "슬럼프가 왔다. 대국장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실력이 아니라 외부 영향으로 지고 있더라. 사람들이 편하지 않다든지…"라고 돌아봤다.
이동훈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결심했다.
이동훈을 위해 이종사촌 형인 조남석(38) 씨가 발 벗고 나섰다. 조 씨는 도하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비롯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세계선수권 동메달 등을 휩쓴 정상의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조 씨는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이동훈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일정과 체력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자처한다. 특히 유도 선수로서 치열한 승부 세계를 잘 이해하는 만큼, 이동훈이 더 독하게 바둑을 둘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있다.
이동훈은 "혼자 공부하면 공부량이 기존보다 줄어들기는 할 것이다. 또 제가 열심히 안 하면 기량이 떨어질 것이다"라면서도 "목표가 있으니 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만의 바둑을 찾는 여행'을 하는 이동훈은 "나의 바둑은, 좋게 말하면 기본기에 충실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 바둑이다. 상대가 저를 부담스러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 좋게 말하면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보완점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동훈은 "대국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올까도 생각 중"이라며 대국 중 자신의 생각이 눈빛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 방법으로 선글라스 착용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동훈은 이런 다양한 시도와 도전으로 "바둑이 다시 재밌어졌다"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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