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어머니 위한 조수미의 사모곡…"미웠지만 이젠 이해해요"

입력 2019-04-23 12:18   수정 2019-04-23 19:03

치매 어머니 위한 조수미의 사모곡…"미웠지만 이젠 이해해요"
4년 만에 정규앨범 '마더' 발매…"北 공연할 날 오길"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어머니가 치매로 고생하시면서 저를 전혀 몰라보세요."
에너지 넘치던 소프라노 조수미(57)의 얼굴에 그늘이 내렸다. 어머니 김말순 씨는 수년 전 치매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조수미는 딸의 노래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해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차근차근 선물을 준비해왔다.

조수미는 23일 오전 11시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새 앨범 '마더'(Mother)를 녹음한 것은 "굉장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라면서도 "이 앨범은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를 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3월 조수미는 아버지 조언호 씨를 떠나보냈다. 그러나 프랑스 파리 독창회를 앞두고 차마 귀국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조수미에게 '공연을 마치고 오라'고 했다.
"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원하신 것처럼 노래했어요. 마침 앙코르에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가 들어갔고 DVD로 찍혀 '포 마이 파더'(For my father)라는 영상물로 남았죠. 그 공연은 마치 운명처럼 아버지를 위한 콘서트가 됐어요. 훗날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시더군요. 아빠를 음악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됐듯이, 나를 기억할 무언가도 준비해달라고."

조수미는 젊은 날 어머니를 엄격한 모습으로 기억했다.
"어머니는 본인이 성악가가 되지 못한 것을 굉장히 원망하며 사셨어요. '너는 나처럼 결혼하면 안 되고, 대단한 성악가가 돼 세계를 돌며 내가 못 한 노래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루에 두세 번씩 들으며 자랐죠. 딸을 너무 닦달하셨고, 하루에 8시간 피아노를 안 치면 문도 안 열어주셨어요. 사실 어머니를 미워하며 원망도 많이 했어요. 내 유아 시절을 빼앗은 것만 같고, 자기 꿈도 못 이루면서 왜 딸에게만 책임을 다 지우는가 이해를 못 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다. 그녀가 '어머니'가 아닌 '여성'으로 다가온 순간부터였다.
"제가 8살 정도 됐을 때예요. 어머니가 저녁에 설거지하는 뒷모습이 갑자기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던지요. 엄마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느껴지더군요. 결혼 생활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 슬프게 사는구나, 어떻게 하면 저 여자를 도와줄 수 있을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게 아직도 생생해요. 제가 성악가를 꿈꾸게 된, 아주 특별한 저녁이었어요."
조수미는 서울대 음대를 거쳐 1984년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했을 때, 그 서러웠던 자취 생활을 기억했다. 타향 만리에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어머니였다.
"작은 셋방에 들어가서 음식도 없이 굶으면서 가장 그립던 분이 어머니였어요. 그분이 원하던 걸 꼭 들어주고 싶었어요. 그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사실 제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비로소 이해되더라고요. 성악에 대한 재능을 알아보신 어머니에게 감사해요. 어느 날 저를 떠나신다면 아마 세상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분이 될 거예요."

조수미는 앨범 수록곡 13곡을 모두 손수 골랐다. 타이틀곡 '바람이 머무는 날'(Kazabue)를 비롯해 '마더 디어'(Mother Dear), '워터 이즈 와이드'(Water is wide), 드보르자크의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Songs My Mother Taught Me) 등 세상 모든 어머니를 위한 노래들이 담겼다. 정통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민요까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으며, 산타체칠리아음악원 후배인 이탈리아 테너 페데리코 파치오티와 듀엣도 시도했다.

그는 "어찌 보면, 비록 제가 엄마가 되진 못했지 않느냐. 될 가능성도 이미 없어 보이고"라며 "저는 항상 엄마같이 큰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음악이라 여겨져 뿌듯하다"고 말했다.
보너스 트랙인 '아임 어 코리안'(I'm a Korean)에는 평생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이름을 알린 조수미의 신념이 담겼다.
"우리 젊은이들을 위해 부른 곡입니다. 저는 세계 무대를 돌면서 한시도 '소프라노 수미 조, 프롬 코리아'를 잊어본 적 없어요. 항상 자랑스럽게 함께하는 수식어죠. 이 노래를 넣기를 강력히 원한 데는, 제가 한국 사람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다분히 있었어요.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웨어 아 유 프롬'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그때 '아이 엠 프롬 코리아'라는 대답을 떳떳하게 하는 거예요."
조수미는 앨범 발매와 함께 지난 21일부터 5월 8일까지 용인, 강릉, 대구, 부산, 서울 등 전국 8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 '마더 디어'를 진행 중이다.
유네스코 평화 대사이기도 한 그는 언젠가 북한 공연도 꿈꾼다고 했다.
"저는 한국이 낳은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유네스코 평화 예술인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라고 생각해요. 정치인들이 갈 수 없는 곳에 예술인은 갈 수 있죠.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하루빨리 음악으로 교감할 무대가 생기면 정말 좋겠습니다."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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