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성희롱·혐오 만연한 대학 익명 커뮤니티, '광장 되찾자' 목소리

입력 2019-05-05 06:00  

[인턴액티브] 성희롱·혐오 만연한 대학 익명 커뮤니티, '광장 되찾자' 목소리
"일상적인 성희롱·혐오 글, 도 넘었다"…14개 대학서 에타 문제 공론화 움직임

(서울=연합뉴스) 황예림 인턴기자 = 단국대 17학번 A씨는 시험 기간이 되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여학생의 외모를 평가하는 글을 대학생 커뮤니티 앱 '에브리타임(에타)' 게시판에서 하루에도 몇 건씩 목격한다. '도서관 2열에 앉은 여자 다리 예쁘다', '5층에 앉은 여자애들 섹시하다' 등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글 등이다.
에브리타임은 대학생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강의 시간표 공유 플랫폼으로 이곳의 익명 게시판은 사실상 학내 최대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익명성에 기대어 걸러지지 않은 글들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과 함께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성희롱·여성 혐오가 일상적"…대학 사회 공론장의 현 주소

지난 17∼19일 단국대 에타에는 "시험 보는데 앞자리 레깅스 입은 계집X (때문에) 집중 안 됐어", "오늘 도서관 옆자리 앉은 여자 너무 XX서 공부를 못함. 살짝 짧은 치마 입었는데 다리 XX 이뻤음", "천캠(천안캠퍼스)인데 오늘 XX XX 큰 여자 봤다", "예전 축제가 좋았다. 15년도에 섹시 댄스 배틀 1등한 XX과 XX야 잘 살고 있지?" 등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에타에 글을 올리는 사람도 단국대 학생이지만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도 결국 단국대 학생"이라며 "글의 당사자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기분이 나쁘다"고 토로했다.
성균관대 16학번 윤김진서씨도 "에타에는 성희롱 발언이나 차별적인 글이 일상적으로 올라온다"며 "지난해 11월 에타에 올라온 혐오 글을 모아 학교에 대자보를 붙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자보로 문제를 제기한 글들엔 '총여학생회 잔존 세력들 몽둥이로 두드리고 구둣발로 짓밟아야 한다', '성범죄 무고죄 당하면 그 여자 죽이는 게 나을 듯', '아빠 성 버리고 싶다고 욕하는 XXX들은 아빠한테 XX이라도 당했냐?' 등 여성을 향한 폭력적인 발언이 가득했다"고 말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에타의 여성·소수자 혐오는 심각한 상황에 이른 지 오래"라고 진단했다. 대학 사회는 긴밀하게 연결된 좁은 공간인데도 에타에선 '아니면 말고' 식으로 특정 개인을 공격하고 '신상털이'도 심심찮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들어가면 그만 아니냐'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에타가 대학 내 여성·소수자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부산대에서 미투 운동이 일어나자 에타에서 피해자와 미투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신상을 퍼트리거나 '몽키XXX로 척추를 부숴버리겠다'는 협박 글이 올라오는 등 2차 가해가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 "익명제·누적 신고제 등 이용 규칙이 비판 목소리 없앤다"

에타 내 혐오 분위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학생들은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에 '익명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는 "일반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에선 자신의 발화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따라오기 마련인데 익명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에타에선 혐오 발언만 있고 그에 대한 책임은 없다"며 "익명의 공간이라는 환경적 요인과 대학 사회 구성원인 20대 남성의 반페미니즘 정서가 맞물리며 혐오의 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재학생 운영제', '누적 신고제' 등의 이용 규칙도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에브리타임은 이용자 누구나 게시판을 생성하고 자신이 만든 게시판을 관리할 수 있지만, 정작 가장 많은 글이 올라오는 '자유 게시판'과 '비밀 게시판'에는 관리자가 따로 없다. '특정인이나 단체ㆍ지역 등을 비방하는 게시물, 성적 비하를 포함하는 게시물 등의 게시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게시글을 관리하거나 게시자를 제재할 사람은 따로 없다.
연세대 15학번 C씨는 "에타의 신고 제도는 비판 목소리가 나올 수 없게 만드는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에타에서 글이 삭제되도록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신고 제도'는 신고가 일정 건수 이상 되면 자동으로 게시물이 삭제되는 누적 신고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미 혐오성 글에 동조하는 이들이 다수를 이뤄버린 에타에서 신고 제도가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이다.
2017년에 여성 혐오적 글에 적극적으로 대항했다가 조롱과 신고를 경험하고 1년 동안 에타 이용 금지 조치를 당했다는 연세대 C씨는 "여성 혐오적인 글을 지켜보는 여성 학우들의 선택은 에타를 떠나거나 반박 글을 작성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반박 글을 작성하면 혐오성 글을 지지하는 이들로부터 신고를 당해 글이 지워지거나 욕을 먹고 그다음부턴 '눈팅족'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설명했다.

◇ "공론장 버려둘 수 없다" 광장 되찾으려는 대학생들
일각에서는 강의 평가·시험 정보 등을 열람할 수 있는 학내 정보의 집결지이자 영향력 있는 학생 커뮤니티로 자리 잡은 에타를 '혐오의 장으로 둘 수 없다'며 자정 운동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용한 커뮤니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혐오 발언의 타깃이 되는 여성·소수자들은 설 자리가 없는 공간이라는 점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외부 공론화를 통해 최소한의 자정 작용을 꾀하자는 취지다.
지난해에는 트위터·페이스북 등 SNS에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에타를 고발하는 계정이 잇따라 개설됐다. 이 계정을 통해 학생들은 도 넘은 에타의 혐오 글을 캡처해 외부에 공개하고 있다. 현재 에타 공론화 계정이 개설된 대학교는 서울대·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부산대·한양대·단국대·충북대·서울시립대·경희대·한국외대·동국대·중앙대·상명대 등이다.

연세대 에타 고발 계정을 운영 중인 C씨는 "혐오의 놀이터가 된 에타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외부에라도 알리자는 마음에 고발 계정을 열게 됐다"면서 "에타는 극도로 폐쇄적인 커뮤니티인데 외부에 문제점을 알려 공론화를 하면 자정 작용이 조금이나마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밝혔다.
고발 계정을 만들고 19학번 신입생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받았다는 그는 "'연세대에 정말 저런 사람 많나요?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라고 쪽지를 보내오는 새내기들에게 '에타 내 여론이 모든 연대생의 뜻과 같은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는 "에타의 혐오 글을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에타를 공론화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부산대 에타 고발 계정 운영자 B씨도 "에타에 혐오 글을 쓰는 사람들이 외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부끄러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며 "에브리타임이 제공하는 여러 유용한 기능을 특정 그룹의 학생들만 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신상을 털거나 협박하는 글을 보지 않기 위해서 이 공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학생이 안 나오게 하려면 에타의 자정 작용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NS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새로운 공론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연세대에선 총여학생회 폐지를 전후로 혐오 분위기가 극심해진 에타를 대신해 여학생들이 목소리를 낼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지며 재학생 단체인 '연세 여성주의자 재학생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 관계자 15학번 D씨는 "반대 의견이 나오면 입을 막아버리는 에타 대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네트워크'라는 이름답게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여러 담론에 대해 건강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혐오성 게시글 관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연합뉴스 질의에 에브리타임 측은 "내부 규정상 별도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에브리타임에 앞서 연세대와 서강대, 이화여대 학생들에게 시간표 정보와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제공하던 '타임테이블'은 이대생을 향한 공격과 여성 혐오적인 글로 몸살을 앓다가 2016년 사이트 관리자가 "그간 여성과 여대를 향한 맹목적인 공격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자정 작용을 기대하고 일부 사용자를 탈퇴시켰지만 수많은 피해자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히며 폐쇄한 바 있다.
yellowyer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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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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