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등반사고 상당수는 '엉터리' 산소통 때문"

입력 2019-04-24 16:27  

"에베레스트 등반사고 상당수는 '엉터리' 산소통 때문"
네팔 당국, 낡은 산소통 사용금지 조치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고산 등반 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불량 산소통이 상당수 등반사고를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NYT)는 23일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산소통 불량으로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심각한 위기가 초래되는 상황이 빈발하고 있다면서 현지 네팔 관계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 등반대의 장비점검에 나설 방침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수익 극대화를 겨냥한 상업 등반대들이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중고산소통 등을 사용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지난해 봄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한 등반대의 경우 25명 가운데 9명이 휴대한 산소통이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찔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고 전했다.
불량 산소통의 경우 상부의 산소조절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산소통 자체의 결함으로 산소가 외부로 누출되는 것으로 등반자들은 정작 정상에 다가간 지점에서 필요한 순간에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NYT는 지난 20여년간 최소한 21건의 위험한 장비 사고가 발생했으나 현지 네팔 당국은 장비 안전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면서 그러나 올봄 에베레스트 등반시즌개막을 앞두고 조처를 하기 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팔 당국은 지난달 10년 이상 된 낡은 산소통의 사용을 금지하는 한편 산소의 질(質)에 대한 기준을 설정했으며 등반대의 장비를 점검하기 위한 기구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팔 관광부 관리인 미라 아차리야는 NYT에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면서 등반대를 점검하기 위해 군(軍) 요원이 베이스캠프에 배치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등반업체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 트레킹'의 다와 스티븐 사장도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위기가 임박한 상황"이라면서 "업계가 산소통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990년대 돈을 받고 에베레스트 등정을 주선하는 이른바 에베레스트 상업등반이 활발해진 것은 부분적으로 러시아 포이스크(Poisk)사가 가볍고 저렴한 산소통을 시판한 때문이었다. 포이스크사는 지난 25년간 네팔에서 사용된 산소통의 90% 이상을 공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등반 가이드들이 재사용 가능한 산소통을 암시장 등에 유통하고 등반업체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본래 제작업체에서 재충전과 정비를 거치지 않은 채 사용하면서 불량 작동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99년 여름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영국의 청년 등반가 마이클 매슈스(22)가 정상 등정 후 실종된 사고와 관련해 산소통 불량이 원인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면서 소송전으로 번지기도 했다.
2005년 매슈스의 부친은 당시 등반업체 측과 산소통 공급업체를 살인죄로 제소했으나 법원은 매슈스가 실종될 당시 장비 문제를 겪었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제소를 기각했다. 매슈스의 유해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밖에 로빈 무어라는 미국 의사는 지난 2017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갑자기 산소 부족에 시달리다 셰르파가 산소통을 교체해주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산소통을 교체하다 폭발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 중고 포이스크 산소통의 경우 10% 정도는 산소 누수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포이스크 사측은 산소통 누수나 산소조절기 이상에 대해 자사가 정비하지 않은 산소통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면서 수명이 다했거나 불법적으로 충전을 받은 산소통의 폭발 위험에 대해서도 이미 경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유명방송인이자 작가인 벤 포글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거의 도달해서 산소통을 교체하다 산소조절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셰르파와 등반대장이 자신의 장비를 건네주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yj378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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