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만에 잊힌 카슈끄지…사우디 국제행사 유력인사로 붐벼

입력 2019-04-25 19:28  

반년 만에 잊힌 카슈끄지…사우디 국제행사 유력인사로 붐벼
지난해 10월 '사막의 다보스' 불참 행렬과 대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사우디아라비아에 드리워진 자말 카슈끄지의 그림자가 반년 만에 사실상 사라지는 분위기다.
사우디 왕가에 쓴소리했던 언론인 카슈끄지는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보요원들에게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잔혹하게 살해됐다.
그의 살해 사실과 이를 은폐하려던 사우디 정부의 실상이 드러나자 전 세계는 사우디와 인연을 끊을 듯이 등을 돌렸다.
살해의 배후라는 의혹을 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왕위를 승계하지 못할 만큼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사우디에 대한 외면과 비판 여파는 살해 사건 3주 뒤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 경제행사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사막의 다보스'로 불리는 이 큰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던 서방과 아시아 일부의 경제계 유력인사가 잇따라 불참을 선언했다.
인권문제에 둔감한 중국과 러시아, 걸프 지역 우방, 사우디의 차관 공여가 필요했던 파키스탄 등이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반년만인 24일(현지시간) FII와 같은 장소에서 열린 '비전 2030 금융권 국제회의'는 기류가 전혀 달랐다.
지난해 FII에 참석을 취소한 HSBC의 존 플린트 최고경영자(CEO),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핀크 CEO가 패널 토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탠다드차타드, 런던주식거래소, 크레디스위스, 미쓰비시 UFJ 등에서도 이번에는 최고위 임원이 참석했다.
알아라비야방송 보도에 따르면 플린트 CEO는 24일 토론에서 "우리가 사우디에서 할 수 있는 역할에 흥분이 된다"라며 "사우디 경제의 장래는 밝다"라고 말했다.
핀크 CEO는 "지난 2년간 사우디에서 일어난 변화는 정말 놀랍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행사에 대해 "테러 혐의로 37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한 이튿날 열린 이번 회의는 성황을 이뤘다"라며 "무함마드 왕세자가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는 방증이다"라고 평가했다.
카슈끄지 사건으로 잠시 위축됐던 사우디에 대한 투자도 완연히 살아났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이달 초 12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이 회사채 공모 경쟁률은 8대 1에 이를 만큼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우디 주식시장(타다울)은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18% 상승했다.
사우디가 외국 투자자, 은행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재료는 충분하다.
아람코가 2년 안에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고,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수백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추진 중이다.
돈은 인권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게 냉정한 현실이지만 카슈끄지 사건의 충격파가 워낙 컸던 탓에 사우디가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지만 사우디는 반년 만에 이를 벗어난 셈이다.
사우디의 '재기'에는 "사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라며 원론적인 태도로 대한 미국의 간접 지원이 뒷받침됐다.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 11명을 기소하고 이 가운데 5명에 대해 사형을 구형하면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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