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선언 1년] ⑦"대북라인 위기감 느껴야", "북미 실무협상부터 복원해야"

입력 2019-04-26 06:00   수정 2019-04-26 07:00

[판문점선언 1년] ⑦"대북라인 위기감 느껴야", "북미 실무협상부터 복원해야"
정세현·이관세·위성락·조병제 등 전직 통일·외교 고위당국자 제언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현혜란 기자 =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을 계기로 70년을 반목해온 북한과 미국이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길었던 갈등의 시간이 주는 무게 때문인지 1년이라는 시간은 양국의 입장차이를 좁히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지난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수차례 다시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누구도 먼저 양보할 기미는 없다.
중재자를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여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하노이 회담 결렬에 책임을 묻는 인사를 단행하고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개최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미 대화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서 한국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문점 선언 1주년을 하루 앞둔 26일 통일부와 외교부 출신 고위당국자들의 제언을 들어봤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인 정 전 장관은 북미대화가 냉각기에 접어들면서 남북관계까지 흔들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며 "대북라인이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 전 장관은 대남·대미라인을 총괄해온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 자리에서 경질된 점을 언급하며 "김영철과 서훈 국정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으로 이어진 3각 구도가 깨지는 모양새"라며 "일련의 조치에 담긴 북한의 진짜 '속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남북 당국 간 공식 대화 채널인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한미연합공중훈련을 비난하는 대남 비난 담화문을 발표한 것 역시 심상치 않아 보인다며 "4차 남북정상회담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입장이 선회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정부가 조속히 남북 간 물밑접촉을 통해 북미 협상의 교착상태를 풀어내지 않으면 한반도 시계가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 전 장관은 "김영철 부위원장의 경질로 끊어진 남·북·미 3각 구도의 톱다운 방식을 조속히 다시 살려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미특사, 대북특사를 보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관세 전 통일부 차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이 전 차관은 "북미 정상 사이의 대화 동력이 아직 살아있는 만큼 이를 잘 살려 나가는 것이 우리 정부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 전 차관은 "북미 협상 교착으로 남북관계가 지금은 좀 멈춰서 있지만, 4·27 판문점 선언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있다"며 "남북관계 진전은 물론이고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에서도 나름의 통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체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수요는 북미 양쪽에 모두 있으므로, 우리 정부가 그 접점 찾아서 협의 이어갈 수 있도록 대화의 동력을 살려 나가고 해결책 모색하기 위한 중재와 촉진 노력 더 배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차관은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남북교류를 확대할수록 북측과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이에 따라 비핵화를 달성한 가능성이 커진다며 "남북관계 진전이 비핵화 달성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점을 미국에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북러정상회담 이후 러시아와 중국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우군을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입장에서 이러한 구도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상반기 중 실무협상을 시작하려 할 것"으로 전망했다.



◇ 위성락 전 주(駐)러시아대사
북핵 협상 수석대표 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던 위 전 대사는 비핵화 협상 타결을 위해 북미 정상이 만나 담판을 보는 톱다운만이 능사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톱다운 방식으로 지난 30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던 북핵 협상을 타결할 수 있다는 과도한 기대감은 과거 바텀업 실무협상의 실패로 쌓인 피로감과 1인 지배체제라는 북한의 특성이 겹쳐서 만들어진 신화라는 게 위 전 대사의 지적이다.
위 전 대사는 "실무협상 역시 정상의 지휘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톱다운과 바텀업 중 양자택일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배합하고, 조합하고, 선택하며 현란하게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실무협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만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공히 약속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실무협상이라는 점을 내세워 북한을 설득해야 하는데, 여기서 한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위 전 대사는 말했다.
위 전 대사는 한국이 북한에는 과거처럼 도발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만류하는 한편 비핵화에 있어서 유연한 태도를 주문해야 하고, 미국에는 제재 카드를 과도하게 휘두르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으니 절제를 당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조 전 원장은 북미가 하노이 회담을 거치며 협상의 등식이 '비핵화 대 제재해제'로 굳어졌고, 양측 모두 자신이 가진 패를 온전히 지키려고만 하기 때문에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분간 미국은 미국대로 제재가 북한을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제재 카드'를 버릴 리 없고,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 카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조 전 원장의 전망이다.
조 전 원장은 북한과 미국이 강 대 강 대치를 벌이는 가운데 한국이 끼어드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남북관계 진전과 북미관계 진전을 선순환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전반적으로 남북관계 특수성을 고려해 제재 예외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아닌 만큼 인도주의 사업이나 공동학술 연구와 같이 제재에 구애받지 않는 남북협력 사업을 통해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조 전 원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임기는 무한정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5년 단임제에 묶여있어서 조급해질 수 있는데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며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만 매이기보다는 중국·일본 등 주변국 관계를 다지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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