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오른 화두 '北 체제보장'…美언론이 보는 시각은

입력 2019-04-26 11:40  

다시 떠오른 화두 '北 체제보장'…美언론이 보는 시각은
WP "안전보장 신뢰할 약속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아"
전문가들 회의적 시각…북 체제보장 거론 진정성 의문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대화에서 북한 체제보장 문제가 변수로 다시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에는 자국 안보와 주권 유지를 위한 보장이 필요하다"며 이를 비핵화 논의의 화두로 던진 것이다.
체제 안전을 담보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최근 협상 국면에서 제재 완화가 핵심 쟁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 측에 또 다른 숙제를 안긴 것이나 다름없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이 북한은 제재 완화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최대 압박' 전략의 유지나 강화만으로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힐 수 있을 것이라는 미국 측 통념을 뒤집었다고 분석했다.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아는 김 위원장이 안전담보 문제를 소홀히 할 리 없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이 체제보장을 궁극적 대가로 요구할 것이라는 점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에 스스로 시사한 바 있다.
당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하노이에서 심야 기자회견을 하고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WP는 북한이 궁극적으로 비핵화의 최종적인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으로 다수의 전문가가 보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체제보장을 염두에 둔 과도적인 조치도 있다. 북한이 실제로 요구한 한국전쟁 종전 선언의 경우 '미국은 적대 세력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중단 요구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체제 안전을 담보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내부 반란을 지원하지 않는 것도 보장해주기를 바라지만, 이는 미국이 결코 약속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W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지적했다.
러시아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은 외부 공격뿐만 아니라 내부 불만도 억누를 보장을 원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란코프 교수는 "만약 미국이 북한 내부의 반란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더라도 미 행정부가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체제보장 약속과 관련, "차기 미국 대통령이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느냐"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에서 타결한 이란 핵합의를 뒤집는 등 기존의 약속을 파기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북한 체제보장 논의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옛 소련 붕괴 후 미국의 영토 보장 약속을 받고 핵무기를 폐기한 우크라이나가 최근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을 러시아에 뺏겼는데도 미국으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사례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 외교관은 WP에 "미국의 약속은 명백히 깨졌다"며 "김 위원장이 왜 워싱턴의 약속을 믿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푸틴 대통령이 6자회담 부활을 통해 보다 구속력 있는 국제사회의 틀로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지만, 란코프 교수는 어떤 틀로도 북한에 핵무기 보유만큼 강력한 안전 담보를 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북한 측 체제보장 요구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정 박 한국석좌는 WP에 "북한은 '김씨 왕조'의 주민 탄압과 정보 통제를 정당화할 '적대적인' 미국과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한다"며 "북한의 안전 보장 요구는 비핵화를 늦추려는 '무화과 나뭇잎'(치부를 가리는 용도)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했다.
firstcirc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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