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가련 샤를로트는 잊어라…김광보 파격 오페라 '베르테르'

입력 2019-04-29 19:34  

청순가련 샤를로트는 잊어라…김광보 파격 오페라 '베르테르'
청바지·미니스커트 입고 21세기로 날아온 고전
김광보 연출 "현실적 인물 그리고 싶었다…욕 많이 먹을 것"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학대와 애정을 번갈아 주면 아이는 헷갈리고 마음에 병이 생긴다. 연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의 앞뒤가 다르면 상대는 혼돈에 빠진다.
올해 오페라계 화제작 '베르테르'가 29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프레스콜을 통해 베일을 벗었다. 서울시극단 단장이자 '스타 연출가'로 유명한 김광보(55) 연출의 첫 오페라 도전작이다.
2시간 10분의 러닝타임 동안 가장 유심히 살펴봐야 할 인물은 샤를로트다. 독일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속 청순가련한 샤를로테는 찾아볼 수 없다. 김광보 버전에서 그는 지극히 감정에 충실하고, 베르테르를 유혹했다가 거부했다가를 반복하며, 결단의 순간에는 무서우리만치 자기중심적인 팜므파탈이다.



오페라는 베르테르(신상근·김동원)가 샤를로트(김정미·양계화)에게 반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출발한다. 샤를로트는 '나는 약혼자가 있다'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여지를 두는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베르테르는 절망하지만, 샤를로트는 결혼식을 강행한다.
돌아온 베르테르는 샤를로트에게 도망가자고 애걸한다. 샤를로트의 대답은 '안 된다'다. 그런데도 이 과정에서 "왜 빨리 돌아오지 않았느냐"며 베르테르에게 먼저 키스하는 건 샤를로트다.
낙심한 베르테르는 샤를로트의 남편 알베르에게 권총을 빌려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의 심상찮은 사이를 눈치챈 알베르는 일부러 샤를로트에게 직접 권총을 갖다 주라고 하고, 베르테르는 샤를로트가 보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충격적인 건 숨이 붙은 베르테르를 발견했을 때 샤를로트의 반응이다.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도, 정작 베르테르의 숨이 끊어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친다. 의사를 부르지도 않는다.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무대는 현대적이면서도 인물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꾸며졌다. 화려한 드레스로 상징되는 오페라 특유의 고전적 의상은 없다. 가수들은 청바지, 미니스커트를 입고 운동화와 하이힐을 신었다. 머리 모양도 출퇴근길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2000년 초연했던 김 연출은 "'베르테르'를 21세기로 데려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연출은 프레스콜 직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사랑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베르테르의 이야기가 지금, 현재에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2000년 뮤지컬 초연 때는 베르테르가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납득이 안 됐다"며 "그런데 이번에 음악을 들으니 알겠더라. 샤를로트는 끊임없이 베르테르를 자극하는구나, 계속 자살 동기를 부여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베르테르 자살의 동기가 무엇인지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샤를로트가 숨진 베르테르를 두고 도망치는 결론에 대해선 "무척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김 연출은 "우리가 과연 샤를로트를 나쁜 여자라고 욕할 수 있겠느냐. 자기 살길을 찾아가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세상에는 그렇게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샤를로트를 너무 파격적으로 그려서 관객에게 욕먹을 것"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이어 "관객 대부분 지고지순한 샤를로트를 생각했을 테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5월 1∼4일 세종문화회관. 3만∼12만원.


clap@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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