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미국과 영국의 주요 대학들이 과거 식민주의 시대 약탈과 인권침해 흔적 지우기에 나선 가운데 800년 역사를 가진 영국 대학 케임브리지가 '노예무역으로 수혜를 입었는지에 대한' 2년간의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는 지난해 노예무역과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유사한 조사를 벌여 대학이 당시 노예무역으로 인해 2억 파운드(약 3천억원) 상당의 이득을 취했다고 밝힌 바 있다.
30일 일간 텔레그래프와 더타임스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케임브리지대의 이번 과거사 조사는 잉글랜드나 웨일스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앞서 다른 대학들의 조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 출신 스티븐 투페 부총장(인권법)이 담당할 조사팀은 과거 식민주의 시절 대학과 산하 도서관, 박물관 등 대학 기관들이 대서양 노예무역과 기타 강제노동으로부터 재정 및 기타 혜택을 받았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또 18~20세기 초 대학이 '인종차별에 대해 어떤 사고를 가졌는지'도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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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측은 박사과정을 이수한 2명의 아프리카학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대학의 문서와 다른 기록 등을 검토해 대학이 노예제와 강제노동으로부터 얻은 수혜 정도를 조사할 것이라면서 오는 2021년 가을 노예제와의 연관성을 공개 인정하고 그 적절한 대처방안 등을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법적, 재정적으로 독립된 산하 31개 대학 전체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며 본부 부지와 교수진, 그리고 피츠윌리엄 박물관 등 수집품 등을 포함하게 된다.
그러나 대학 규모를 고려할 때 대규모 조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의 경우 상당수 유명 대학들이 노예제도와 연관성에 대한 논쟁에 휩싸인 바 있다. 사립 예일대는 2년 전 학생들의 압력으로 열렬한 노예제 신봉자였던 전(前) 부통령 존 칼훈의 이름을 딴 단과대 명칭을 바꾼 바 있다.
프린스턴대는 노예제 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조지타운대는 과거 대학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노예를 매매한 전 총장들의 이름을 딴 2개 대학 건물의 명칭을 변경했다.
하버드대 법학대학원(로스쿨)은 학생들이 항의로 18세기 노예 소유주와 연관된 대학원의 공식 문장(紋章)을 교체한 바 있다.
투페 교수는 "영국의 오래된 대학들과 노예제도 간의 연관성에 대해 일반과 학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케임브리지도 식민주의 시대 강제노동에 따른 혜택을 받았는지 마땅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역사를 바꿀 수도, 그로부터 숨을 수도 없다"면서 이번 조사를 통해 "케임브리지가 인류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행한 역할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학 측은 그러나 현재로서 조사를 통해 사후 재정적 형태의 배상이 이뤄질지는 단정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투페 교수는 지난 1990년대 캐나다 원주민에 관한 정부 조사위원회를 이끌었으며 유엔 산하 기구의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2007년에는 강제적, 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을 이끌었다.
케임브리지대의 과거사 조사는 학생들의 관련 항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다른 대학들과 다소 사정이 다르다.
옥스퍼드대 지저스 칼리지는 2년 전 학생들의 항의에 굴복해 19세기 식민주의 시대 영국군 원정대가 나이지리아에서 약탈한 청동 닭 조상을 대학 본당에서 철거한 바 있으며 대학은 조상을 나이지리아로 반환할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에는 런던 퀸메리대가 식민시대 인종학살자로 악명이 높은 벨기에 레오폴드 2세가 세운 대학 초석을 제거한 바 있다.
또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세실 로즈의 동상 철거를 놓고 모교인 옥스퍼드대 오리엘 칼리지에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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