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기업 활동이냐 핵심기술 빼가기냐 '쟁점'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전기차용 배터리로 활용되는 2차전지를 둘러싼 LG화학[051910]과 SK이노베이션[096770] 간 경쟁이 국경을 넘어 국제적 다툼으로 커졌다.
'포스트 반도체'로 주목받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두고 선·후발 두 업체 간 신경전이 미국에서의 소송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LG화학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에 대해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 'SK 베터리 아메리카'가 있는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30일 밝혔다.
소송의 쟁점은 SK이노베이션이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LG화학의 인력을 빼갔냐는 것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간 LG화학 전지사업본부 전 분야에 걸쳐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갔다고 주장했다. 이 중에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 참여자도 포함됐다.
전직의 자유를 막을 수는 없으나 해당 인력이 직장을 옮기기 전 회사시스템에서 개인당 400여건에서 1천900여건의 문서를 내려받는 등 기술유출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은 '정황'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증거'도 있다고 주장했다.
LG화학이 입수해 공개한 전직자의 입사서류에는 지원자가 LG화학에서 한 업무와 동료 이름이 적혀 있다.
LG화학은 "지원서에는 전극 제조 공정 관련 프로젝트 당시 상황과 배경, 목적부터 성과와 개선방안 같은 결과물까지 2차전지 양산 기술 및 핵심 공정기술 등에 관한 LG화학의 주요 영업비밀이 매우 상시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LG화학은 2차전지 재료로 쓰이는 무기물 코팅 분리막 특허를 둘러싸고 SK이노베이션과 법정공방을 벌인 적이 있다.
LG화학은 2011년 12월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의 분리막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특허심판원은 2012년 8월 LG화학에 특허 무효심결을 내렸고 LG화학이 이에 불복해 무효심결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도 2014년 2월 LG화학이 낸 특허침해금지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판결했다.
LG화학은 항소했다가 취하했고 SK이노베이션도 같은 해 10월 소송을 취하하면서 두 회사는 휴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5년 만에 핵심인력 유출을 두고 두 회사가 다시 맞붙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 분쟁이 예견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현재 국내 2차전지 시장은 LG화학이 선도하고 있다.
LG화학은 1992년부터 2차전지 관련 연구개발을 검토해 1995년 본격적인 독자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1998년 국내 최초 상업화 및 대량생산체제 구축 성공, 2000년 미국 연구법인 설립, 2004년 안전성강화분리막(SRS®) 기술 독자개발, 2009년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자동차인 제너럴모터스(GM)의 쉐보레 볼트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 선정 등 업계 선두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의 추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SK이노베이션은 폴크스바겐으로부터의 '선(先) 수주'를 받고 지난 3월 본격적인 조지아주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조지아주 공장은 1, 2단계 개발을 통해 오는 2025년까지 연 20GWh(기가와트시) 규모의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한다.
당시 김준 총괄사장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023년에서 2025년 사이에 글로벌 톱3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LG화학이 국내 법원이 아닌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LG화학은 미국은 소송 당사자가 보유한 각종 정보와 자료를 상대방이 요구할 경우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증거개시절차'가 있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ITC가 LG화학에 손을 들어줄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수입이 어려워지는 등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LG화학은 "경쟁사의 부당 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해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이자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한 데 따른 국익 훼손의 우려가 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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