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인권침해 문제 이전에 근본인식 바꿔야…자립 도와야"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달 12∼30일 서울시청사 후문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며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 전환을 요구했다.
더 많은 장애인이 더 빨리 장애인 시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이었다. '장애인이 보호받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시설에서 왜 장애인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할까.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이상용 사무국장은 1일 "장애인들이 꼭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하느냐는 문제의식이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살 수 있는데도 테두리에 가둬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시설 문제를 꾸준히 제기한 단체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하 발바닥행동)에 따르면 한국에서 본격적인 탈시설 논쟁은 2000년대 중반 시작됐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조사로 시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이나 감금 등 인권침해 실태가 밝혀졌다.
그러면서 단순히 시설을 좋게 만드는 문제를 넘어 장애인이 왜 시설에 들어가게 됐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발바닥행동은 "탈시설운동은 장애인이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을 깨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이상용 사무국장도 "시설이 장애인에게 좋은 것이고 보호도 해준다는 식의 인식이 많은데 실제로는 인권침해나 운영 비리가 아주 많다"며 "더욱이 침해나 비리가 없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사회복지법은 장애인 시설의 존재 이유를 장애인들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지역사회로 나가게끔 하는 것으로 규정했는데 그런 활동은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대부분 밥 먹이고 재워주는 것으로 끝난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실 시설에 대한 지원금도 많이 나오는 편이고 시설 자체는 잘 지어놓은 곳이 많다"며 "다만 시설 투자와 지원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립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발바닥행동 역시 "탈시설 운동은 시설에서 장애인이 나오는 것과 함께 더는 시설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지역사회 자립생활 환경 만들기 운동'도 같이 전개한다"고 짚었다.
이 국장은 "자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처와 활동 보조 지원"이라며 "경제활동을 못 하는 장애인이라고 해도 적게나마 장애인연금과 기초생활 수급이 도움이 된다. 이를 어떻게, 얼마나 지원할지는 정책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들의 주장은 탈시설을 넘어 시설을 없애는 내용의 가칭 '시설폐쇄법'에까지 이른다.
활동 보조가 필수인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소규모 자립 주택 형태의 공동체는 유지하되 대규모 시설은 없애자는 것인데, 시설 운영 단체들과의 논의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발바닥행동은 "대부분의 시설 거주 장애인은 어쩔 수 없이 입소한 경우가 많다"며 "애초에 시설이 없었더라면 지역사회와 가족을 중심으로 더불어 사는 지원체계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달 30일 "노숙농성 끝에 서울시와 탈시설 지원 확대에 합의했다"며 "농성 천막 등은 철거하고 협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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