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싸움을 보는 두 시선…민속놀이냐 vs 동물 학대냐

입력 2019-05-02 07:10  

소싸움을 보는 두 시선…민속놀이냐 vs 동물 학대냐
대회 개최 지자체들 "합법적 민속놀이·지역경제에도 보탬"
동물보호단체 "초식동물 인위적 싸움이 학대…경제효과 미미"

(전국종합=연합뉴스) 소싸움은 뿔 달린 머리를 맞대고 싸우다가 먼저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는 소가 지는 경기다.


보통 몸무게 700㎏의 7살짜리 전성기인 소들이 뿔을 공격하는 뿔치기, 상대 뿔에 내 뿔을 거는 뿔 걸이, 무작정 힘으로 밀어붙이는 밀치기 등 다양한 기술로 20분가량 겨룬다.
체급에 따라 400만∼800만원 수준의 우승 상금을 놓고 치열한 혈투를 벌이면 관중석에서는 '잘한다', '박아라', '찔러라', '밀어라', '감아라' 등의 구호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싸움이 격해지면 상대 뿔에 찔려 피를 흘리거나 살가죽이 찢어지고, 겁에 질린 소들은 똥오줌을 지리기도 한다. 드물지만 싸우다 죽기도 한다.
합법적인 전통 민속놀이임에도 동물 학대라는 논란과 함께 폐지론이 대두되는 이유다.

◇ 전국 11개 지자체 연중행사…"합법 민속놀이로 지역경제에 보탬"



매년 소싸움 대회를 여는 전국의 지자체는 진주시·창원시·김해시·의령군·함양군·창녕군(이상 경남), 완주군·정읍시(이상 전북), 보은군(충북), 달성군(대구), 청도군(경북) 등 총 11곳이다.
이들 지자체는 "소싸움은 민속놀이이자 문화유산"이며 "관광객 유입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된다"는 입장이다.
스페인의 투우, 태국의 닭싸움, 터키의 낙타싸움처럼 우리도 전통문화 유산이라는 관점에서 소싸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지자체들이 소싸움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농식품부령을 근거로 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자체장이 주관·주최하는 소싸움 대회를 민속경기로 고시하고 있다.
개싸움이나 닭싸움은 단속 대상인 반면 소싸움은 민속경기에 포함돼 단속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청도 대회에서는 관람객들이 승부를 맞히는 방식의 도박도 가능한 이유다.
의령군 관계자는 "합법적이고 올바른 민속문화이기 때문에 이를 정당하게 계승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소싸움은 관광상품으로서 가치도 높아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려말 소싸움으로 두 고을의 힘겨루기를 한 데서 유래한 의령 소싸움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낙동강과 남강변에 일제히 소를 몰아낸 뒤 곳곳에서 싸움을 붙여 모래바람과 함성으로 의병들을 많아 보이게 함으로써 승리를 끌어내는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령군의 소싸움은 지역 대표축제인 의병제전과 연계해 매년 개최, 역사의 의미와 민속놀이의 재미까지 선사한다"고 덧붙였다.
청도군 관계자도 "소싸움축제가 열리는 닷새 동안 32만명 안팎의 국내외 관람객 수가 찾는데, 이는 4만5천명가량인 청도군 전체 인구의 7배를 웃돈다"며 "축제 기간 청도가 시끌시끌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이어 "소싸움을 보러온 관광객들의 발길은 운문사, 와인 터널, 청도 읍성 등 주요 관광지로 이어져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음식비, 주유비, 숙박비 등을 포함한 1인당 평균 소비를 3만원씩만 잡아도 총 10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에서다.
◇ 동물보호단체…"유순한 초식동물에 싸움 자체가 학대, 경제효과 미미한 예산 낭비"



소싸움 자체를 소에 대한 학대로 간주하고 폐지론을 주장하는 동물보호단체는 인권처럼 동물권(動物權)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소싸움이나 물고기 축제처럼 곳곳에서 찬반 마찰을 빚는 상황에서 전국 지자체들이 반려동물이나 야생동물 할 것 없이 동물의 권리를 고민해야 할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동물보호단체는 "완전한 초식동물로서 자연 상태에서는 다른 소와 싸우지 않는 유순한 동물에게 싸움을 시키는 것 자체가 고통이자 학대"라고 주장했다.
특히 뿔싸움으로 소들이 입는 상처가 많고 심지어 복부가 찢어져 장기가 빠져나오기도 한다며 폐지가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싸움소를 육성하는 과정의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소의 품종개량이 이뤄지면서 1t 넘는 싸움소도 육성되는데 싸움소는 체구도 중요하지만, 지구력을 위해 밀도 있는 근력과 큰 폐활량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싸움소에 산악달리기, 200㎏짜리 타이어 끌기, 비탈에 매달리기 등 혹독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또 대회가 임박하면 싸움소에 미꾸라지탕, 뱀탕, 개소주, 산 낙지 등 온갖 보양식을 먹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풀을 먹고 종일 되새김질하도록 진화한 초식동물에 이런 음식을 먹이고, 대회 출전을 위해 장거리 이동함으로써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수송 열(shipping fever)이 발생해 폐렴과 패혈증에 걸리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인위적으로 싸움을 붙여 인간의 유희 대상으로 삼는 소싸움은 명백한 학대"라고 덧붙였다.
채 팀장은 "청도 대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자체 소싸움 대회는 지역경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만큼 동물을 학대하고 지역 홍보 효과가 작은 소싸움 대회는 이제 중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온다.
소싸움 대회를 여는 지자체 대부분의 재정자립도가 15% 안팎인데도 매년 1억∼3억원의 대회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청도를 제외한 대회의 관람객 대부분이 지역 노인 등 인데다 대회별 관람객도 5만명 안팎이어서 새로운 관광객 유입 효과가 거의 없는 탓에 경제적 관점에서도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 대안은…"대회 출전 횟수 규제, 전통 살린 대안 놀이 개발 필요"
전통놀이인 소싸움 대회가 동물 학대라는 여론에 밀려 외면받지 않으려면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다른 지역의 대회 출전에 따른 장거리 이동을 막기 위해 싸움소가 연간 1~2개의 대회에만 참가토록 규제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소를 대상으로 강제 몸집 불리기를 줄이고 가혹한 훈련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경남 창녕군 영산지방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인 소머리 대기(목우전·木牛戰) 같은 대안 놀이 개발도 필요하다.
소머리 대기는 마을을 동과 서로 편을 갈라 각각 나무로 소의 모양을 만들어 이 소의 머리를 맞대고 밀고 당기다가 상대를 먼저 땅에 주저앉히는 편이 이기는 경기다.
국민의 인식변화로 스페인의 전통문화인 투우 경기가 개최되는 17개 자치단체 중 3곳이 금지한 것을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라는 여론도 있다. (박정헌 이승민 홍인철 기자)
ich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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