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원유수출 전면 제재 첫날…이란 휘발유배급제 소문 '흉흉'

입력 2019-05-02 18:30  

美 원유수출 전면 제재 첫날…이란 휘발유배급제 소문 '흉흉'
테헤란 시내 주유소엔 아침부터 휘발유 넣으려 차량 긴 줄
이란 리알화 급등, 물가 상승…서민 주름 깊어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전면 제재하기 시작한 첫날인 2일(현지시간) 이른 아침부터 테헤란 시내 주유소에는 휘발유를 넣으려는 차로 긴 줄이 이어졌다.
이란에서 주말인 목요일 오전은 테헤란 시내가 한산한 편이지만 주유소만은 앞다퉈 휘발유를 채우려는 시민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전날 일부 현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일 자정부터 휘발유 배급제를 시행한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소문의 내용도 구체적이어서 L당 1만 리알(공식환율 기준 약 24센트)인 현행 휘발유 가격으로는 한 달에 60L까지만 살 수 있고 초과분은 L당 2만5천리알(약 60센트)로 사야 한다는 것이다.
휘발유 가격은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제재로 불붙은 물가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 정부의 지지도와 직결될 만큼 이란 시민층이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이란은 풍부한 원유를 보유한 산유국이지만 정유 시설이 부족해 올해 들어서야 국내 휘발유 수요를 겨우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정제량을 갖췄다.
이란 석유장관은 휘발유 배급제가 단 하루 만에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1일 오후 "휘발유를 제한적으로 공급한다는 보도는 거짓말이다"라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이란 국영 정유·유통회사도 휘발유 배급제는 유언비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란 정부의 다급한 노력에도 시민들은 차를 몰고 주유소로 향했다.


2일 오전 테헤란 중심도로 샤리아티로(路)의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은 모하마드레자 씨는 "정부가 휘발유 배급제를 부인했지만 믿기 어렵다"라며 "한 달에 휘발유를 150L 정도 쓰는 데 60L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미국의 전면 제재가 시작되는 날에 맞춰 휘발유 배급제를 시작한다는 소문을 들었다"라며 "저항이 큰 배급제를 시행하기 전에 정부가 언론을 통해 (소문을 내) 여론을 떠본 것 같다"라고 짐작했다.
테헤란에서 무허가 택시를 운전하는 야시르 씨는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운송비가 오르고, 물가는 더 오를 것"이라며 "나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주 불안해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이란은 2007년부터 8년간 서방의 제재로 휘발유 수입이 어려워지자 비업무용 차량 소유주에게 월 60L 한도로 정상 가격에 휘발유를 살 수 있는 카드를 발급했다. 이 한도량을 넘기면 4배로 비싼 돈을 주고 휘발유를 사야 했다.
이란 국영 정유·유통회사는 지난해 말 모든 자동차 소유주를 대상으로 휘발유를 살 때 제시해야 하는 카드를 다시 발급했다. 이란 정부는 사재기를 막는 조처라고 했으나 시민 대부분은 배급제의 사전 준비라고 여겼다.
이란 국민에게 미국의 경제 제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대 압박'으로 위협하는 미국의 적대적 움직임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 때문에 "제재를 극복할 수 있다"라는 정부의 장담과 민심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3∼4월 전국적으로 내린 폭우로 채소 가격도 크게 올랐다. 채소를 많이 먹는 이란인으로서는 타격이 크다. 당장 이란인의 주식인 케밥을 파는 식당에서는 당연히 곁들여야 할 생양파를 함께 주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제재로 이란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0%에 달한다고 발표했지만, 서민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작년보다 배는 올랐다는 게 이란 현지의 분위기다.
2일 이란 리알화의 가치(비공식 시장환율)는 한 달 전과 비교하면 8.5% 하락했다. 1년 전보다는 무려 3분의 1로 떨어졌다.
미국 제재의 위력으로 이란 경제의 '이상 신호'가 하나씩 나타나는 셈이다.
이란 경제 전문가들은 리알화 가치 폭락, 물가 급등보다 실업률이 가장 파급력이 큰 사회 불안요소라고 진단한다. 이란 정부가 집계하는 공식 실업률은 15% 정도다.
외국 기업이 속속 이란을 떠나고 이란의 경제난이 심각해지면 대규모 실업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로 외국과 교역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을 대비, 올해를 '국내 생산 증진의 해'로 선포해 자급자족하는 경제 구조를 구축해 제재를 돌파하려고 한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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