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기' 10년간 1천500명 살린 관악구 '베이비박스'

입력 2019-05-0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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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기' 10년간 1천500명 살린 관악구 '베이비박스'
연평균 200여명…미혼모·20대 엄마가 맡긴 아기가 대다수
"'유기 조장' 시선이 가장 힘들어…베이비박스 필요 없는 사회 오길"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길가에 버려지는 아기들 한번 살려보겠다고 아내와 둘이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됐네요. 이 상자 하나가 그간 1천500명이 넘는 새 생명을 살렸습니다."
어린이날(5일)을 하루 앞둔 4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해온 지난 10년을 회고하며 이처럼 말했다.
베이비박스는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한 영아를 임시로 보호하는 간이 보호시설이다. 이종락 목사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2009년 12월 관악구 신림동에 가로 70㎝·세로 45㎝·높이 60㎝ 크기의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이 목사는 "아내와 둘이 시작했다가 점차 규모가 커져 지금은 상근 인력만 8명"이라며 "초창기보다 더 전문적으로 영아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 3일에 2명꼴로 찾아오는 아기들…미혼모·20대 아이가 반 이상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베이비박스를 처음 설치한 2009년 이후 이달 1일까지 약 10년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아이는 총 1천569명이다.
첫해인 2009년에는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영아가 1명도 없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4명이었다. 이후 베이비박스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급증했고, 2014년에 25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뒤로도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영아는 3일에 2명꼴인 연평균 200명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17명의 영아가 맡겨졌고, 올해에도 54명이 베이비박스에 왔다.
아이를 맡기기 위해 베이비박스 문을 열면, 근처에서 대기하던 상담사가 베이비박스에 설치된 센서 신호를 보고 나와 아기 부모와 상담을 한다.
상담사는 부모에게 아이를 맡아 키울 것을 권유하는데,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전체 영아의 10%(168명)가 상담 끝에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아이들은 다른 가정에 입양되거나 보육시설로 인계됐다.
이 목사는 "부모가 마음을 바꾸거나 상황이 좋아져서 보호시설에 넘겨진 아이를 다시 찾아가는 경우도 자주 있다"며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의 30%가 원 가정에 복귀한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교회 측 설명에 따르면 절반 이상(2017년 68%, 2018년 59%)이 미혼모였다.
연령별로는 20대(2017년 47%, 2018년 50%)가 절반가량을 차지하며 가장 많았고, 이후 30대(23%), 10대(14%), 40대(7%) 순이었다.


◇ "베이비박스는 '유기 조장' 아닌 '영아 보호'"
이 목사에게 지난 10년간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며 겪은 고충을 묻자 "베이비박스가 유기(遺棄)를 조장한다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정부나 서울시, 자치구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한다고 우려하는데, 영아 유기를 결심했으면 번거롭게 베이비박스를 찾을 이유가 없다"며 "베이비박스는 영아를 유기하는 곳이 아니라 영아를 보호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하혈을 하면서도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안전하게 맡기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산모도 있다"며 "베이비박스의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아니라 철저하게 보호받은 아이들"이라는 말도 했다.
이 목사는 지난 10년간 베이비박스를 거쳐 간 1천500여명의 영아를 하나하나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은 한 여성이 흙이 잔뜩 묻은 아이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이를 산에 묻으려다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베이비박스에 데려온 것이었다"며 "누구 한명도 쉽게 잊을 수 있는 아이가 없다"고 돌아봤다.
교회 측은 10년간 사용해오던 베이비박스를 다음 주 중 새것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기존 베이비박스는 체코 사례를 참고해 제작됐다. 내부에는 아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열선과 담요, 아이가 도착했다는 신호를 알리기 위한 벨 센서 등이 설치돼 있다. 새 베이비박스에는 자동잠금장치가 추가되고, 방진·방수와 알람 기능도 더해진다.
이 목사는 "더 나은 베이비박스도 좋지만, 베이비박스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며 "출산한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산모와 영아를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이 하루빨리 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kc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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