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오는 15일 개봉하는 '배심원들'은 2008년 국내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을 소재로 한 영화다.
법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 상식과 집단지성으로 이미 짜인 판을 뒤흔들고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제법 감동과 쾌감을 준다.
세간의 이목이 쏠린 첫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날.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인 8명 배심원이 한자리에 모인다. 재판은 유죄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양형 결정만 남은 상태. 피고인은 어머니를 잔인하게 살해한 아들이다. 자백과 범행을 목격한 증인, 범행에 쓰인 도구 등도 있어 중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재판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회생 신청을 하러 법원에 갔다가 뒤늦게 8번 배심원으로 합류한 청년사업가 남우(박형식)는 유죄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배심원 제동에 재판장(문소리)은 유무죄부터 다시 다투기로 한다.
늦깎이 법대생, 10년간 남편을 보살핀 요양보호사, 재판보다는 일당에 관심이 많은 무명배우, 일찍 귀가해야 하는 주부, 지식을 뽐내는 대기업 비서실장, 평범한 20대 취준생 등이 배심원 면면이다. 평생 남의 죄를 심판해본 적이라고는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자 살아온 환경과 처지에서 사건을 바라보며 의견을 개진한다. 8명이 모인 공간은 사회 축소판이다. 짧은 대화 속에서도 빈부 격차, 세대 차이 등이 드러난다. 대세 의견을 따를 것을 종용하는 모습 역시 우리 사회 단면이다.
그러나 남우는 끈질기게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며 사건 정황에 의문을 제기한다. 모두가 유죄라고 말할 때 홀로 무죄라 주장한다. 소수 의견은 대세 의견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보였던 재판도 균형추를 다시 찾아간다.
영화는 법 정의란 무엇인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재판이 얼마나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질문할 수 있는 용기와 편견을 버리고 그 질문을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영화는 주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면서도 한편의 소동극처럼 유쾌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대화로 주로 전개돼 자칫 단조로울 수 있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는다. 배심원들과 관객의 눈높이가 맞아떨어진 점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극적 반전을 위해서라지만 애초 부실 수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변호사나 검사도 그렇고, 뜬금없는 판타지적 설정도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일부 캐릭터는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진다.
극 중심을 잡는 인물은 재판장 역을 맡은 문소리다. 그는 카리스마는 물론 지적인 매력, 인간미, 고뇌 등을 동시에 보여준다. 첫 스크린에 도전한 박형식의 연기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이 작품으로 장편 데뷔한 홍승완 감독은 2008년 실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유사 사건 80여건과 판결문을 찾아보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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