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미사일이라면 사거리 상관없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
한미 모두 신중한 태도…방한하는 美 비건 특별대표 메시지 주목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북한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에서 쏘아 올린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이라면,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한 것이지만 한국과 미국은 판단을 유보한 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를 '미사일'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있고, 미국 역시 이를 문제 삼지 않는 대목에서는 자칫 한미가 강경 대응에 나섰다가 어렵게 마련한 협상 국면에서 북한이 이탈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류가 읽힌다.
국방부는 5일 발표한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관련 입장'에서 북한이 발사한 기종 미상의 단거리 발사체를 "신형 전술유도무기"라고 평가했으나 이 발사체가 미사일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전날 "정부는 북한의 이번 행위가 남북 간 9·19 군사합의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이 조속한 대화 재개 노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 이후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부처 장관회의가 열린 이후 나온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 이후 약 13시간만인 4일 오전(현지시간) 트위터에 글을 올렸지만, 북한의 발사체 발사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은 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한 신뢰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내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고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며 "김정은은 북한의 대단한 경제 잠재력을 완전히 알고 있고 이를 방해하거나 중단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는데 이는 북한의 무력시위에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협상 재개의 문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이뤄진 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충분한 브리핑을 받았다는 외신 보도와 그 이후에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등을 고려하면 미국도 북한의 이번 행위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이달 9∼10일 한미 워킹그룹 협의차 방한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현 정세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의 발사체 발사 이후 시차를 두고 한국을 찾는 만큼 미국의 정리된 입장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날 오전 북한이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 등을 통해 공개한 사진과 영상에는 '신형 전술유도무기'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는 장면이 담겼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발사체가 지난해 2월 8일 북한군 창설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처음 선보인,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지대지 탄도미사일과 닮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보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을 금지하고 있으나,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 했을 때는 별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규탄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규탄성명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만을 단독으로 문제 삼기보다는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더 심각한 도발을 했을 때 이를 묶어서 함께 비난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이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내포된 위협 수준이 기존 평화 질서를 해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이 깔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박근혜 정부 시절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북한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고 지적하는 등 외교적 조치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다.
한국과 미국이 지금은 북한의 무력시위에 대응을 자제하는 듯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앞으로 도발 수위를 높여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핵실험에 준하는 도발을 감행한다면 비핵화 협상 판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을 언급한 데 이어 지난달 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라고 말한 점 등은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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