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전태일 열사 유가족 참석…5·18기획전시 관람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민주화운동을 하던 중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이철규 열사의 30주기 추모제가 6일 엄수됐다.
이철규 열사 30주기 행사위원회는 이날 광주 북구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지에서 추모객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를 열었다.
여기에는 이한열·전태일 열사의 유가족 등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전국의 민족민주열사의 유가족 20여명도 함께 했다.
추모제는 이철규 열사의 삶과 투쟁을 담은 노래공연을 시작으로 이 열사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사 등이 이어졌다.
이 열사의 어머니 황정자씨는 "누가 내 아들을 죽였는지 살피고자 노력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고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내고 있다"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아들의 죽음을 밝히고 죽어야 할 것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발언을 마친 황 씨는 억울하게 죽은 아들이 생각나는 듯 애처로운 목소리로 "우리 철규야"를 외치며 끝내 흐느꼈다.
추모제에 참석한 추모객들도 황 씨의 흐느낌에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철우 상임 행사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30년 전 이 열사의 안타깝고 참혹한 죽음을 우리가 잊지 못해서, 그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다"며 "그는 짧은 삶을 살면서 이 땅의 민주화와 민족의 화합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이어 "언젠가부터 '내가 이철규다'라는 릴레이 캠페인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며 "우리가 모두 이철규가 되어서 이 땅의 자주민주 통일이 이뤄지는 그 날까지 함께 투쟁하자"고 강조했다.
이 열사는 1982년 조선대에 입학한 뒤 '반외세 반독재투쟁위원회'를 결성해 활동하다 1985년 국가보안법 등으로 구속됐다.
1987년 가석방된 이 열사는 학교로 복학해 교지 '민주조선' 편집위원장을 맡았다가 교지에 게재한 논문이 문제가 돼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현상 수배됐다.
그는 같은 해 5월 3일 광주 제4수원지 청암교에서 경찰의 검문으로 붙잡힌 다음 행방불명됐다가 일주일 뒤인 10일 제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국가기관은 "경찰을 피해 수원지 철조망을 넘어 도망치려다 미끄러져 익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2002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조사 불능' 결정을 내렸고, 이 열사는 결국 2004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한편 추모제를 마친 민주열사 유가족들은 1980년대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기록해 둔 기획전시 '전국의 5·18'을 관람했다.
1987년 서울교대생 신분으로 민주화를 외치며 자결한 박선영 열사의 어머니는 전시회에 걸려있는 박 열사의 사진을 발견하고선 한참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전시를 둘러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그만인 사건이 너무 많다"며 "일부이긴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전시를 열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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