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2년]⑧일상에 깃든 평화…북미 기싸움에 중대기로 선 한반도

입력 2019-05-07 06:00   수정 2019-05-07 07:01

[文정부 2년]⑧일상에 깃든 평화…북미 기싸움에 중대기로 선 한반도
성큼 다가온듯했던 '한반도의봄' 위기…연말까지가 '골든타임'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지키는 남북한의 군인들은 총을 내려놓았고,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던 비무장지대(DMZ)의 감시초소(GP)는 허물어졌다.
역설적이지만 남북한 최전선 대립과 갈등의 지역엔 평화둘레길이 만들어졌고 그곳엔 냉전의 역사를 되새기기 위한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의 핵담판이 합의 없이 끝나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얼어붙고 있다.
지난 4일 북한이 발사한 '신형전술유도무기' 몇발에 한반도 정세가 흔들리는 상황은 지난 1년간 문재인 정부가 만들어온 평화가 작은 충격에도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집권 첫해인 2017년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 쾨르버재단 연설을 통해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천명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말해 북한이 미국에 대해 느끼는 안보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위한 협상을 비핵화 협상과 병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이전 정부의 제재 일변도에서 벗어나 대화와 압박을 병행키로 했다.
2017년 5월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이어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와 그해 9월 북한의 역대 최고강도 핵실험(6차)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악화하는 와중에도 문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천명한 대북 기조를 견지했다.
이런 인내는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고위급 대표단 방남을 고리로 극적인 국면 전환을 리드하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었다.



작년 3월 대북, 대미 특사 파견을 통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인 노력 속에 이뤄진 남북미 3국의 '톱다운' 외교는 작년 4월과 5월, 9월 각각 개최된 남북정상회담과 작년 6월 제1차 북미정상회담 등 역사적인 정상외교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봄을 기대케 했다.
200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북핵 협상이 10년 만에 재개되고, 남북 간에는 9·19 군사합의에 따른 전방 GP(감시초소) 시범 철수(남북 각각 10개 GP 파괴) 등 땅 위에서의 구체적 성과들도 이어졌다.
그러나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상황은 한반도 평화가 아직 여물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일괄타결론과 북한의 단계적 접근의 차이가 드러났지만 그 이면에는 북미간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한은 내년 미 대통령 선거에 따른 정치적 가변성 속에서의 미측 합의 이행 지속 여부를 각각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미간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한반도 정세가 평창올림픽 이전의 긴장 국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연말까지를 '대미 인내의 시한'으로 설정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며 '배후'를 다지더니 4일 10발 안팎의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로 쏘아 보내는 무력시위를 했다.
한미는 절제된 대응을 하며 상황을 관리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지만, 북미 협상에서 드러난 '간극'이 조기에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북미 갈등 속에 남북관계도 '춘래불사춘'의 형세다. 비무장지대에서의 6·25 전사자 유해공동발굴 사업은 북한의 무응답 속에 진척이 없고, 남북간 정례 협의 채널인 개성남북연락사무소 소장회의는 하노이 북미회담 전인 2월 22일 이후 10주 연속 불발됐다.
향후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는 여러 요인과 변수가 교차하는 형국이다.
우선 북한도 김 위원장이 '연말까지' 미국의 태도변화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판'을 깨는 고강도 도발로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한미는 아직 북한이 '선'을 넘지는 않았다는 인식 아래, 강대강의 갈등고조를 피하고, 상황을 관리하며 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기조다.
반면 북미간 불신의 골이 깊은 상황에서 북미 모두 양보 없이 '중장기전' 불사 입장을 보이는 상황은 북한의 핵무력 양적 강화와 핵보유국 기정사실화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저강도 무력시위'를 계속 이어가면서 정세가 긴장될 가능성도 있다.
또 그동안 남북미 3자 주도의 협상 프로세스에 큰 이견을 내지 않았던 중국과 러시아의 행보도 변수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우군을 찾는 북한과 역내에서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견제하고 한반도에서 입김을 강화하려는 중·러 등 3자가 의기투합해 대북 안전보장을 위한 다자협상 카드를 띄울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연말까지 미국의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언급한 상황, 내년부터는 미국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북핵 외교의 '골든타임'은 앞으로 반년 정도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현상 변경'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식적인 남북미 3자 논의틀을 구축함으로써 한국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과 함께, 대화가 여의치 않을 상황에 대비한 대북 억지력 강화 측면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의 발사체 발사로 '판'이 흔들린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앞으로 한국 정부는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협의해 나갈 텐데, 남북미가 함께 참여하는 3자 워킹그룹을 구성하는 방안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의 실질적인 행동을 보아가며 협력의 범위를 확대하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며 "그간 우리의 대북정책 노력이 비핵화와 관계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억지력 유지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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