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항모에 이란은 核카드 만지작…美 합의탈퇴 1년만에 긴장고조

입력 2019-05-08 11:27   수정 2019-05-08 15:33

美항모에 이란은 核카드 만지작…美 합의탈퇴 1년만에 긴장고조
美, 항모전단에 B-52 등 폭격기 중동 급파하고 폼페이오는 이라크방문
이란, 오늘 대통령 대국민연설…핵합의 의무이행 줄이며 핵활동 재개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공식 탈퇴한 지 꼭 1년이 되는 8일 양국 사이의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

먼저 미국이 대(對) 이란 제재를 차례로 복원하고 이란산 원유 수입 금지의 예외 조치를 중단한 데 이어 항공모함과 폭격기 파견을 밝히며 경제·군사적 압박 수위를 한층 끌어올린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에 맞서 이란도 미국의 합의 탈퇴 1주년을 맞아 마찬가지로 핵합의 의무이행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며 핵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제기돼 핵위기 재발 우려를 낳고 있다.

◇ 항모에 B-52 폭격기까지…폼페이오도 전격 중동行
대 이란 경제 봉쇄망을 조이는 데 주력하던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들어 군사·외교 행보에도 부쩍 속도를 내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는 분위기이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트럼프 행정부는 주말인 지난 5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명의의 성명을 통해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들을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항모전단과 폭격기 중동 배치의 배경으로 나란히 '미국의 이익'에 대한 이란의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빌 어번 미 중부사령부 대변인은 7일 성명에서 "이란과 이란의 대리군이 이 지역에서 미군을 공격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최근의 뚜렷한 징후 때문에 더 많은 병력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을 요청한 미 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중동에 배치하는 폭격기 중에는 B-52 4대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중동 지역에 배치됐던 B-1 폭격기와 비교해 B-52는 장거리 작전이 가능하고 핵 탑재 능력도 갖추고 있다.
항모전단과 폭격기를 급파한 것은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에 실어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CNN방송은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란이 미국 목표물에 대해 공격을 감행할 의도를 갖고 있다고 미국이 믿게 만든 여러 정보 중 하나가 미사일 이동에 대한 우려"라고 전했다.
CNN은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 등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포함한 추가 화력의 중동 배치도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순방 중 독일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한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이란과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전격 방문해 대 이란 경고 메시지를 더했다. 독일 총리 및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당일 취소하고 동행 취재기자단에도 행선지를 알리지 않을 정도의 긴박한 일정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풀 기자단에 이라크 방문이 "고조되는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 이란 대통령의 입에 전세계 시선집중…핵활동 재개할까
이에 맞서 이란도 핵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2015년 7월 역사적인 핵협상 타결 이후 한동안 진정됐던 이란발(發) 핵위기가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 1주년인 8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 정부의 입장을 밝히기로 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란 ISNA통신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로하니 대통령의 대응이 핵합의 26조와 36조의 틀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 조항은 이란을 비롯한 핵합의 서명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이 상대방에서 핵합의를 위반했다고 판단할 때 이의를 제기하고 최종 결론을 내는 절차를 담고 있다. 미국처럼 일방적인 선언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기보다는 정해진 절차를 밟아 절차적,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IRNA통신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을 뺀 나머지 서명국에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에 상응해 핵합의에서 정한 의무를 이행하는 수준을 점차 줄이겠다"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낼 예정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란 정부가 핵합의를 통해 동결한 원심분리기 생산 등 핵활동을 일부 재개하고, 한도 이상의 우라늄 농축을 시작해 국제사회에 경고를 보낼 것으로 이란 매체들은 전망했다.
다만 이란이 당장 미국과 마찬가지로 핵합의에서 완전히 탈퇴하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은 "이란의 미래 행동은 핵합의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여기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국영 매체들은 전했다.
CNN도 핵합의 의무이행을 줄이겠다는 이란의 결정이 당장 핵합의 파기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는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미국을 뺀 나머지 당사국들이 계속 핵합의 유지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미국과 유럽의 동맹 관계에 압박을 가하고, 국제적 긴장을 높일 수 있다고 CNN은 내다봤다.



◇ 왜 긴장 고조됐나…"워싱턴, 중동 외교정책 실패에 좌절"
미국 정부가 이란을 겨냥한 화력 증강의 구체적인 이유를 내놓지 않으면서 갑작스럽게 양국 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잠재적인 '타깃'으로 이란 정규군뿐 아니라 중동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란의 '대리군'을 일일이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란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팔레스타인의 이슬라믹지하드와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최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조직 하마스와 함께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쐈다는 보도가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볼턴과 폼페이오는 아마도 이란이 최근 제재 강화 등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이용하거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다른 작전을 계획할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또 중동 정책이 족족 실패하는 데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좌절감이 이란과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원인일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진단했다.
firstcircl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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