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사회 이룬 중국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입력 2019-05-09 14:39  

소비사회 이룬 중국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명·청대 사회상 다룬 신간 '사치의 제국'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남쪽 굴 껍데기, 북쪽 곰 발바닥, 동해 전복구이, 서역 말젖까지 갖췄으니 진정 옛사람이 말하는 작은 천하를 이뤘다고 하겠다. 연회 한 번 여는 비용이 중간층의 가산을 다 털어도 마련할 수가 없도다."
중국 명대 수필집인 '오잡조'(五雜俎)에 나오는 음식 소비 행태는 오늘날에도 과하다고 느껴진다. 왕족과 환관이 연 잔치에 대한 서술 중에는 "연회 한 번에 생물 1천여 마리를 죽였다"는 대목이 있을 정도로 당시 사치가 대단했다.
명나라 중엽 이후 음식 사치는 특히 물산이 풍부한 강남 지역에서 유행했다. 음식 서적도 많이 출간됐는데, 조리 방법과 미각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명과 청 시기에 퍼진 사치 풍조는 음식뿐만 아니라 복식, 가구, 여행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에 이미 '사치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명·청 시기 도시사와 사회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 우런수(巫仁恕) 박사는 신간 '사치의 제국'에서 명나라 엘리트들이 향유한 독특한 물질문화를 소개하고, 소비사회가 영국처럼 산업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제시한다.
저자는 명나라 말기가 소비사회였다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다양하게 든다.
그중 첫째는 도시화와 맞물려 나타난 시장 구매율 증가. 이 무렵부터 가정에서 손수 제작하던 일용품을 시장에서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예컨대 청나라 진조범(1676∼1754)은 '진사업집'(陳司業集)에서 "예전에는 신과 버선을 집안 여자들이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는 여러 시장에서 두루 판다"며 차·술·기름·창자·육포를 파는 상점도 증가했다고 전했다.
과거에 사치품으로 인식된 물품이 서민에게 퍼진 점도 확인된다. 사치스러운 의류와 장신구가 일상품이 됐고, 단단한 목재로 만든 가구도 서민 집에 들어갔다.
저자는 "명말 이전의 사치 행위는 대부분 고관대작 혹은 대부호 같은 상층 사회 극소수만이 행한 데 비해 명말에는 사회 중하층에서도 즐겼다"면서 일부 사대부가 높은 신분의 상징인 가마를 누구나 탄다고 한탄할 정도였다고 설명한다.
소비 풍조가 만연하면서 일어난 변화는 신분제도 붕괴와 사치에 관한 새로운 관념 형성이다. 일부 식자층을 중심으로 관광업이 발전하고 사치를 누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생겼다.
가마, 복식, 여행, 가구, 음식의 변화 양상을 조명한 저자는 "명말 사대부가 직면한 세계는 상품경제가 흥성하고 소비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사회였다"며 "이러한 현상은 당시 사회가 소위 '특허 체계'에서 '유행 체계'로 전환됐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그는 명나라 말기 이후 중국이 소비사회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농본 국가임을 강조했기에 산업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명말에서 청대까지 사회질서와 재정 세수를 고려할 때 사치는 낭비라는 개념을 완전히 벗지 못했기 때문에 '탈도덕화'될 수 없었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사치가 악덕이 아닌 공익이라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중국과 서양이 사치 관념을 수용하는 양상이 달랐기에 역사도 다르게 발전했다"고 결론지었다.
글항아리. 김의정·정민경·정유선·최수경 옮김. 596쪽. 2만9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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