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윌리엄 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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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아버지가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화살을 쏘는 장면을 기억한다면,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하는 오페라 '윌리엄 텔'이 낯설지 않겠다.
국립오페라단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의 대작 오페라 '윌리엄 텔'을 무대에 올린다. 윌리엄 텔은 오스트리아 압제에 맞서 싸운 전설 속 스위스 건국 영웅이다.
'윌리엄 텔'은 4막 5장의 상영시간만 220분에 달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공연이다. 1829년 프랑스 파리 초연 이후 19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것도 그런 이유가 한몫한다.
8일 언론에 미리 공개된 공연은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리만치 박력 있는 연출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핍박받던 스위스 민중이 끝내 오스트리아 군인들을 처단하는 장면은 깊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독립 아니면 죽음을 달라", "우리가 물려받은 핏줄에 당당해집시다"라는 대사도 한민족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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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을 맡은 베라 네미로바는 시대 배경을 윌리엄 텔 전설이 탄생한 13∼14세기가 아닌 1919년으로 설정했다. 한국 관객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시도이자,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 총독 게슬러와 그의 부하들은 일본강점기 순사를 연상시키는 동그란 안경과 콧수염, 군복을 착용했다. 네미로바는 "이 무대를 준비하며 한국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며 "관객이 일본 압제와 싸운 역사를 떠올리길 바라며 의상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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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연출도 눈에 띈다. 서곡에서 경쾌한 민중을 묘사한 대목에선 갑자기 압제자들의 자동차가 등장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 기법(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극을 바라보게 만드는 기법)으로, 일부러 음악의 감동을 방해해 관객이 고통받는 민중에게 집중하도록 환기한 것이다.
여성에 대한 묘사도 인상적이다. 극 중 마틸드는 합스부르크가(家) 공주지만 스위스 민중을 지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2막에서 군복에 파일럿 고글을 착용하고 하늘에서 등장하면서 강하고 독립적인 구원자가 될 것을 암시했다. 3∼4막에서 오스트리아 군인들이 스위스 여인들을 겁탈하는 장면도 피하지 않았다. 8세 관람가라는 점을 고려해 표현 수위는 낮췄지만, '전쟁이 발생하면 이런 끔찍한 일도 벌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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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윌리엄 텔 역을 노래한 바리톤 김동원(48)은 노련하고 원숙한 연기로 극 중심을 잡았다. 강인한 독립투사이자 위험에 처한 아들 앞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아버지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여 무르익은 성악적 완성도를 보여줬다. 아들 제미 역 라우라 타툴레스쿠(37)는 30대 후반 여성임에도 10세 소년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하며 극에 활력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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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건 아르놀드 역 테너 강요셉(41)이었다. 아르놀드는 오스트리아 적들의 딸인 마틸드를 향한 사랑과 조국 스위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합적 인물. 테너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인 '하이C'가 20차례 이상 나오는 어려운 배역이다. 그는 '2016 오스트리아 음악극장 시상식'에서 이 역할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베테랑이지만, 지난해 말 성대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공연에서도 이따금 음 이탈이 발생해 안타까움을 남겼다.
다만 합창단 80명, 오케스트라 76명에 무용수·솔리스트 30여명까지 약 200명이 만드는 압도적인 소리는 시청각을 황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공연은 12일까지. 1만∼1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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