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에 공공주택 제공한 로마 시장, 주민들에 성적 모욕 '봉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 로마의 주민들이 집시를 향해 도를 넘은 반감을 표출해 논란이 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일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로마 동부 외곽에 14명으로 구성된 집시 가족이 시 당국에 의해 이 지역의 임대 아파트를 배정받고 입주하자 인근 주민들이 위협적인 언어를 쏟아내며 연일 항의에 나서고 있다.
파시즘을 추종하는 극우 정당 '카사 파운드'의 한 활동가는 외출을 나갔다가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집시 여성을 향해 '창녀'라고 소리치며, "강간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모습이 언론 영상에 잡혀 충격을 줬다.
또 다른 주민은 "모든 집시들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 "(집시를 없애기 위해)무솔리니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는 거친 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주민들의 항의를 진정시키고, 위협에 처한 집시 가족들에게 연대를 표하기 위해 8일 이들의 집을 전격 방문한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도 격앙된 주민들에게 성적인 욕설을 듣는 등 봉변을 당했다.
주민들은 라지 시장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치며 집시 가족을 이 지역에 정착시킨 로마 시의 결정에 반감을 드러냈다.
라지 시장은 이에 "이 가족은 거주지를 합법적으로 제공받았다. 그들 역시 이곳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며 "집시 가족들을 모욕하고, 위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양심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이 시장에게 '더러운 암소' 등의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라지 시장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가야 했다.
로마에서는 지난 달 초에도 시 당국이 집시 약 60명을 도시 외곽의 공공수용 시설에 이주시키려 하자, 현지 주민 수백 명이 집시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차와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며 폭력 시위를 벌이는 등 집시를 향한 증오가 위험 수위에 도달한 듯한 분위기다.
현지 주민들은 집시들이 절도 등의 범죄를 일삼는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배척하고 있다.
대부분 루마니아, 보스니아 등 발칸반도 출신으로 여겨지는 이탈리아 내의 집시 인구는 13만∼17만 명에 달하며, 이들 가운데 약 절반은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개 로마를 비롯한 대도시 외곽의 불법 정착촌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편, 라지 시장이 소속된 집권 '오성운동'의 대표를 맡고 있는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라지 시장의 집시 가정 방문 등의 행보에 대해 "집시에 앞서 이탈리아 국민과 로마 주민을 먼저 도와야 한다"며 짜증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추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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