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 시민은 타인을 배척하는 사람들"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에서 반난민 정서가 고조되는 것과 함께 집시 등 소수민족에 대한 반감도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에 살고 있는 집시 주민들을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10일(현지시간) 일메사제로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교황은 전날 교황청에 집시 주민 500명을 초청해 최근 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배척에 분노를 나타내고, 연대를 표명했다.
교황은 이들에게 "오늘 신문에서 추악한 사실들을 접하고 고통을 받았다"며 "이는 문명사회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교황의 이런 말은 12명의 자녀를 둔 보스니아 출신의 집시 부부가 시 당국에 의해 로마 동부 외곽 카살 브루차토 지역의 임대 아파트를 배정받고 입주한 것에 인근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이들에게 막말을 하고, 위협을 서슴지 않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극우 정당 '카사 파운드'의 한 활동가는 외출을 나갔다가 아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는 집시 아내에게 '창녀'라고 소리치며, "강간할 것"이라고 위협하는 모습이 영상에 잡혀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곳 주민들은 또한 주민들의 항의를 진정시키고 위협에 처한 집시 가족에게 연대를 표하기 위해 이들의 집을 전격 방문한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에게도 거친 욕설을 내뱉는 등 반감을 숨기지 않은 바 있다.
이들은 집시나 난민이 아닌, 어려움에 처한 이탈리아인과 로마 시민들을 시 당국이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에게 고충을 털어놓는 집시들에게 "2등 시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진짜 2등 시민은 타인을 배척하는 사람들"이라고 꼬집으며, 집시들에게 증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을 질타했다.
교황은 또 이날 저녁에는 로마교구의 주교좌성당인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카살 브루차토 지역의 임대 아파트에 입주했다가 봉변을 당한 집시 가족을 따로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교황청의 알레산드로 지소티 대변인은 이와 관련, "교황은 이 가정에 연대를 표현하고, 모든 형태의 증오와 폭력에 대한 확실한 비판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로마 사법당국은 집시 아내에게 성폭행을 하겠다고 외친 남성을 포함해 이 가정을 위협한 다수의 사람들을 입건해 조사를 하고 있다고 ANSA통신은 보도했다.
루마니아, 보스니아 등 발칸반도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 내의 집시 인구는 13만∼17만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약 절반은 이탈리아 국적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절도 등 범죄를 일삼는다는 낙인이 찍힌 가운데 대개 로마를 비롯한 대도시 외곽의 불법 정착촌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탈리아 내 반집시 감정은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가 부총리 겸 내무장관으로 취임한 지난해 6월 이래 더 심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살비니 부총리는 취임 직후 이탈리아 국적이 아닌 집시들을 추방하기 위해 집시들을 대상으로 한 인구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인종 차별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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