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관세 존폐·미국제품 수입 규모에도 견해차
'中기술도둑질 금지' 법제화 두고 공회전 되풀이
양측 매파 격전지…美 "구속력 확보" vs 中 "주권침해 우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원인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법률개정 요구로 관측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양국의 고위급 협상에서도 이 문제는 핵심 쟁점이었으나 평행선을 달렸다.
미국은 중국의 다수 통상·산업 정책을 불공정 관행으로 지목하며 중국이 자국 법률을 뜯어고쳐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법률개정 계획을 미국과 중국의 양자 통상협정인 무역 합의에 명문화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요구의 표적이 되는 관행은 지식재산권 보호와 외국 기업들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등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에 이들 관행을 '기술 도둑질'로 부르며 이를 명분으로 삼아 징벌적 고율 관세를 부과해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이날까지 이틀간 계속된 미중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중국 측 대표인 류허 중국 부총리는 미국에 이 같은 요구를 철회해달라고 촉구했다.
류 부총리는 미국이 지적하는 산업·통상 정책을 법률이 아니라 하위규정인 국무원의 명령으로 변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협상단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 국무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집행기관이자 최고 국가행정기관으로서 법률에 근거한 행정 법규나 명령을 공포하고 지방의 각급 행정기관의 업무를 지도한다.
미국이 앞서 타결까지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전해지던 무역협상을 뒤엎고 전날 '관세 폭탄'을 투하한 것도 중국이 법률개정과 이를 합의문에 삽입하겠다는 기존 세부합의에서 후퇴한 데 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쟁점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불신과 중국의 국가적 자존심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서는 미국과의 통상합의 때문에 자국 법률이 거의 강제적으로 광범위하게 개정되는 사태가 주권침해로 인식될 수 있다.
특히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 비전으로 선포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미국의 요구가 통치체계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다가올 수도 있다.
중국 보수 강경파인 '잉파이'(鷹派)들에게는 미중 무역협상이 과거 굴욕적 늑약으로 인지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왕셔우원(王受文) 중국 상무부 부부장은 합의의 강제이행안을 두고 "19세기에 서구열강이 부과한 종류의 불공정한 조약"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시 주석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평등'을 강조하며 무역 합의가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류허 부총리는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중국 매체들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협상 경과를 설명하며 "원칙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두루 포진한 대중국 매파들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입장이 또 다른 거짓말을 위한 전략적 정지작업으로 비칠 수 있다.
미국 강경파들은 중국이 그간 미국과의 합의를 은밀하게 깨뜨리고 불공정 관행을 계속해왔다는 점을 들어 법률개정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같은 상황이 재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진들이 미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진입, 미국 기업들의 기술과 영업비밀에 대한 보호 조치를 담은 합의를 중국이 위반할 수 없도록 하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무역 합의의 구속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이 무역 합의를 어길 때 제재하는 방안과 중국이 그 제재에 보복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해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해결되지 않은 3대 쟁점으로 합의문 문구, 기존 관세 존폐, 미국제품 수입 규모를 둘러싼 견해차라고 보도했다.
합의문 문구는 법률개정 요구를 둘러싼 갈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무역 합의 뒤 일부 고율 관세를 남겨두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은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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