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부흐빈더 내한공연 리뷰
(서울=연합뉴스) 최은규 객원기자 = 베토벤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었다. 그는 즉흥적으로 피아노 소나타의 악상을 떠올리듯 자유자재로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의 연주를 듣는 청중은 시시각각 새롭게 태어나는 그 놀라운 음악에 사로잡혔다.
잘 안다고 생각한 '비창 소나타'와 '열정 소나타'는 마치 갓 태어난 새로운 음악처럼 신선했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 모든 음표가 새 생명을 얻는 듯했다.
12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루돌프 부흐빈더 리사이틀에서 우리는 비로소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가 어떤 음악인지 알게 되었다. 여러 전기를 통해 전해지는 베토벤의 놀라운 피아노 즉흥 연주의 실체가 무엇인지, 누구든 눈물을 글썽이게 했다던 베토벤의 감동적인 피아노 연주가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부흐빈더는 마치 그 자신이 베토벤이 된 듯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을 이루는 음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부흐빈더 피아노 연주는 결코 계산적이거나 상투적이지 않았다. 또한 전에 그가 음반이나 영상물을 통해 들려준 그 어떤 연주와도 똑같지 않았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평생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구와 연주에 전념한 음악가만이 해낼 수 있는 '자유'의 경지에 다다른 듯했다.
언젠가 그의 동료 피아니스트인 프리드리히 굴다가 부흐빈더에게 "베토벤이 지루하지 않은가"라고 물었을 때 "같은 베토벤 작품을 수백 번 연주해도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고 답했다는 부흐빈더.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의 말을 입증해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생전 베토벤이 그러했듯 다소 파격적이라고 할 만했다. 전 4악장이 하나로 이어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3번의 경우 환상곡 풍 자유분방한 연주와 오케스트라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다채롭고 웅장한 표현력이 일품이었다.
또한 '비창'이라는 표제로 유명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8번의 그 유명한 2악장에선 때때로 '주제선율'과 '반주'라는 성부의 위계 구조를 무너뜨릴 정도로 왼손의 반주부가 강조되기도 했는데, 덕분에 '비창 소나타'는 매우 새롭게 들렸다.
아울러 이 소나타 3악장은 처음의 주제가 되풀이되는 '론도 형식'의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부흐빈더가 선보인 론도 주제들이 모두 새롭고 참신하게 연주되는 바람에 똑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소리 내는 모든 음표는 연주되는 바로 그 순간에 새로 작곡돼 연주되는 듯했다.
매 순간 그 작품의 형식이나 성부 구조의 통념을 뒤엎는 새로운 방식의 연주는 특히 이번 공연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에서 절정에 달했다. 격정적인 1악장을 지나 마지막 3악장에선 박자나 마디선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콘서트홀을 뒤흔들었고, 마지막 음이 끝나자마자 음악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아마도 베토벤이 살아있다면 바로 이런 상상력 가득한 연주를 선보이지 않았을까.
부흐빈더는 '열정' 소나타에 이어 '템페스트'라는 부제로 알려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3악장을 포함해 무려 3곡의 앙코르를 연주했다. 앙코르 연주에선 베토벤 곡뿐 아니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빈의 저녁' 작품56과 바흐 파르티타 제1번 중 '지그'도 연주되어 베토벤 이외의 다른 작품에서도 빛나는 부흐빈더의 비범한 피아노 연주를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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