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건물 파편 해변 유리입자로 남아

입력 2019-05-14 16:54  

히로시마 원폭 건물 파편 해변 유리입자로 남아
공룡멸종 운석 충돌·원폭실험 용융 입자와 유사…건축물 성분 포함만 달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원자폭탄이 투하돼 초토화된 일본 히로시마(廣島)의 건축물 파편들이 인근 해변에 미세한 유리 입자 형태로 남아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4일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연구소(LBL)에 따르면 지질학자 마리오 워니어가 이끄는 연구팀은 히로시마 주변의 해변 모래에 원폭 영향으로 건축물 파편이 녹았다가 식으면서 형성된 유리 입자들이 무수히 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과학저널 '인류세(Anthropocene)' 최신호에 밝혔다.
히로시마에는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이 투하돼 7만여명이 즉사했으며 10㎢ 지역이 초토화되고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워니어는 해변 모래에 남아있는 생물학적 흔적을 통해 해양 생태계의 건강도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다가 히로시마 주변 해변에서 채취한 모래에서 약 6천600만년 전 백악기-팔레오기(K-Pg) 대멸종 지층에서 발견되는 '텍타이트(tektite)' 입자를 연상케하는 구형 유리 입자를 보고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됐다고 한다.
K-Pg 대멸종은 공룡을 비롯해 육상 생물종의 75%가 절멸한 것으로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대형 운석이 떨어지면서 촉발됐다는 학설이 있다. 텍타이트는 이때 운석충돌의 충격으로 용융 암석이 하늘로 퉁겨져 올랐다가 식으면서 천연유리가 돼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니어는 LBL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UC 버클리)의 연구진과 본격적인 공동 연구에 착수해 히로시마만 모토우지나반도 주변 해변의 모래를 채취해 전자현미경 등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타원형이나 필라멘트형 유리 입자와 용융 화합물 등이 포함된 입자들이 "밀리미터 크기로 공기역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건축물 파편"으로 분석됐다.
미국의 첫 핵폭발 실험이 이뤄진 뉴멕시코의 트리니티 시험장과 네바다 지하 핵실험장에서 발견된 용융 파편과도 비슷했지만, 고무나 철, 대리석, 콘크리트 등과 같은 건축자재 성분이 포함돼 결정적 차이를 보였다. 이 성분들은 당시 히로시마 건축물과도 일치했다.
연구팀이 약 10㎝ 깊이까지 수거해 확인한 유리 입자들은 1㎏당 12.6~23.3g에 달했다. 이는 1㎢로 환산하면 약 2천300~3천t에 달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입자들이 1천800도가 넘는 초고열 상태에서 형성된 것으로 분석하면서 원자탄의 엄청난 폭발이 지상 물질을 녹여 하늘로 올리고 고층에서 다양한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이를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일부 입자가 지난 2004년 인근 마쓰다 공장 화재나 연례 폭죽 행사 등과 같은 다른 사건으로 형성됐을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원자폭탄 폭발만큼 일관된 설명을 할 수 있는 다른 시나리오는 없다고 밝혔다.
워니어는 성명을 통해 "도시 하나가 1분 만에 사라진 뒤 그 물질들이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남아있었다"면서 "지난 70여년간 이 물질은 해변에 남아있었지만 자세하게 연구되지 않았으며 이번 연구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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